[O2/커버스토리]사람에게 버림받고 사람에게 구원받은 유기견 천상이의 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23일 03시 00분


그토록 무섭던 사람이… 지금은 정겹답니다

한 시간만 지나도 혀가 마른다. 혓바닥은 쩍쩍 갈라져 고통스럽다. 그래도 머리를 다친 탓에 혀를 집어넣질 못한다. 태어난 지 이제 겨우 9개월. 그사이에 이미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긴 유기견 천상이가 21일 서울 구로구 고척동에 있는 ‘엄마’ 정경순 씨(50)의 집에서 쉬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한 시간만 지나도 혀가 마른다. 혓바닥은 쩍쩍 갈라져 고통스럽다. 그래도 머리를 다친 탓에 혀를 집어넣질 못한다. 태어난 지 이제 겨우 9개월. 그사이에 이미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긴 유기견 천상이가 21일 서울 구로구 고척동에 있는 ‘엄마’ 정경순 씨(50)의 집에서 쉬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11년 7월, 엄마 집에서
서울 구로구 고척동의 한 아파트


특별한 날이다. 엄마와 함께 몇 사람이 집에 찾아왔다. 식구들이 난리다. 저마다 목청껏 짖어댄다. 나도 덩달아 흥분했다. 하지만 난 짖을 수 없다. 목에선 “꺽꺽” 쉰 소리만 나온다. 밖으로 나와 있는 혀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다. 저 사람들도 내가 흉하다고 생각하겠지?

구석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내게 다가온다.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이따금씩 나를 쓰다듬어 준다. 커다란 사진기도 가져왔다. 내가 오늘의 주인공이라나. 기자가 뭐하는 사람들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엄마가 데려왔으니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꼬리를 흔들고, 머리도 들이밀었다. 냄새가 좋다.

난 항상 배가 고프다. 밥을 적게 먹느냐고? 다른 아이들이 하루 2번 먹을 때 난 7번 먹는다. 하루에 닭 가슴살 20개를 먹을 때도 있다. 뚱뚱하냐고? 오히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찐다며 엄마가 걱정한다. 누군가 그랬다. “늘씬하고 잘생겼네. ‘견공(犬公)’ 모델로 써도 손색없겠다”고.

난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 항상 몸을 떤다. 장마가 끝나고 기온이 30도를 넘는데도 심하게 몸을 떤다. 잘 때도 눈만 감고 있을 뿐 쉴 새 없이 떨어댄다. 그러다 보니 쉽게 지친다. 이런 날 보고 수의사 선생님은 엄마에게 그랬다. “가만히 있어도 격렬한 운동을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에너지 소모가 많다 보니 배고플 수밖에 없죠.”

이건 안 당해 보면 모른다. 몸이 계속 떨리면 머리도 지끈지끈 아프다. 근육이 뭉쳤는지 바늘에 찔린 듯 쑤신다. 그래도 엄마는 항상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 천상이가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특별해.”

○ 2011년 5월, ‘내 사랑 바둑이’에서
인천 서구 원당동의 유기견 보호소


지난해 11월 구조된 천상이가 몇 차례 큰 수술을 받고 난 뒤 찍은 사진. 당시 몸무게가 4kg에 불과했던 천상이는 몸이 너무 약해져 마취도 받지 못한 채 수술대에 올랐다.
지난해 11월 구조된 천상이가 몇 차례 큰 수술을 받고 난 뒤 찍은 사진. 당시 몸무게가 4kg에 불과했던 천상이는 몸이 너무 약해져 마취도 받지 못한 채 수술대에 올랐다.
늘 드디어 엄마가 늘 얘기하던 ‘그곳’에 가고 있다. 엄마는 항상 그곳 얘기를 하며 내가 건강해지면 꼭 데려가겠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이 있다는 얘기에 나도 설렌다.

집에서 차를 타고 한 40분쯤 갔을까. 갑자기 시끌시끌해진다. 차에서 내리니 정말 친구가 많다. 100마리도 넘는다고 한다. 나를 가장 반겨준 건 덩치 큰 형이다. 이름은 진해, 시베리아허스키 종이라고 했다. 이름은 형을 후원해 주는 분이 진해에 산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란다. 형은 내가 반가운지 내 몸을 연방 핥아댄다. 처음엔 무서웠는데 1분도 안 돼 친구가 됐다. 형은 나이가 많다고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나랑 비슷하게 생긴 주리 누나도 있다. 진도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진도개라고 누가 그랬다. 친누나를 만난 듯 반갑다. 누나 곁엔 새끼 7마리가 잠들어 있다. 이곳에서 낳은 새끼들이란다. 그런데 예전에 학대를 받아서인지 누나가 자주 아프단다. 새끼를 키우려면 누나부터 건강해야 할 텐데….

엄마는 이곳을 ‘천국’이라 부른다. 오갈 데 없는 친구들을 데려와 이곳에 보금자리를 만들면서 천국에 있듯 마음이라도 편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천상’이란 내 이름도 엄마가 지었다. ‘천상에서 내려온 선물’이란 뜻이라고 했다. 난 내 이름이 참 좋다.

○ 2011년 4월, 아줌마네 집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사람이 무서웠다. 사람만 보면 나도 모르게 눈이 커지면서 눈알이 돌아갔다. 숨도 가빴다. 이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저 강아지 저러다 죽는 거 아냐”라며 수군거렸다. 내가 왜 이럴까. 그 사람이 생각나서일까. 너무 무서웠던 그때, 그 사람.

수의사 선생님은 내 마음에 새겨진 생채기가 너무 크다고 했다. 어쩌면 평생 사람을 무서워할지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아줌마는 날 포기하지 않았다. 항상 내 눈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얘기했다.

“헤어지지 말자. 끝까지 함께 살자.”

난 항상 혀를 쑥 내밀고 있다. 이빨도 작은 어금니 몇 개밖에 없다. 그래서 음식을 씹기 힘들다. 밥 한 알을 먹으려면 스무 알을 흘린다. 아줌마는 그런 나를 위해 직접 숟가락을 들고 매 끼니를 챙겨줬다. 고기는 삼키기 쉽게 어금니 안쪽에 걸어 줬다.

처음엔 입 안의 밥을 뱉어냈다. 몸부림도 쳤다. 그런데도 아줌마는 그냥 웃는다. 쓰다듬어 주면서 다시 숟가락을 내밀었다. 이 아줌마라면 평생 의지할 수 있겠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불렀다. ‘엄마’라고.

아줌마 품으로 천천히 다가갔더니 날 꼭 안아준다. 참 따뜻하다. 마음도 한결 편해진다. 이제 다른 사람을 만나도 숨이 가빠지지 않을 것 같다.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제 그때를 잊을 수도 있겠다.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그건 아직 모르겠다.  
▼ 애지중지 할 땐 언제고… 왜 우리를 쉽게 버리나요 ▼

‘내사랑 바둑이’에 오기 전 이들의 이름은 ‘유기견’ 하나였다. 이곳에 온 뒤 각자의 이름을 얻었다.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인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내사랑 바둑이’에 오기 전 이들의 이름은 ‘유기견’ 하나였다. 이곳에 온 뒤 각자의 이름을 얻었다.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인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내겐 형, 누나, 동생이 참 많다. 태어난 곳도, 아줌마네 집으로 오게 된 사연도 모두 다르다. 처음 집에 왔을 땐 이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매번 혼자 구석에 숨어 지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우린 서로가 서로의 눈이 되고, 발이 되는 사이가 됐다.

그중에서도 하니 누나는 내게 특별한 존재다. 코커스패니얼 종인 누나는 내 마른 혀를 정성껏 핥아준다. 내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정말 고맙다. 잠들기 전에도 내 혀를 핥아주고 잔다. 그 덕분에 난 잠들 때만큼은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런 누나는 폐암 말기란다. 앞으로 1년을 넘기기 힘들다고 한다. 누나는 몸이 약해 자기 밥도 잘 못 챙긴다. 콜록콜록 기침 소리가 애처롭다. 그래서 난 내 밥을 반쯤 떼 준다. 누가 누나를 괴롭히면 콱 물어준다. 그런데 앞니가 없다 보니 상대의 반응이 없다. 그럴 때면 답답하다. 속상하고 미안하다. 나도 누나를 위해 뭔가 해주고 싶은데….

○ 2010년 12월, 병원에서
경기 김포 풍무동의 한 대형 동물병원


숨쉬기가 이렇게 힘든 것일까.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린 것 같다. 갑자기 혀가 쑥 입 밖으로 나오더니 몸이 미친 듯이 떨린다. 아줌마가 나를 안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간다. 홍역 검사를 받았는데 음성이라고 한다. 의식은 자꾸 흐려지는데 수의사는 원인이 뭔지 모르겠단다.

흐릿한 정신에 “앞으로 일주일이 고비”란 말이 들린다. 또 수술을 한다고 한다. 벌써 몇 번째던가. 무슨 수술인지 모르겠지만 견딜 자신이 없다. 차라리 그냥 죽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아줌마는 어떻게든 살려만 달라고 애원한다. 저 아줌마는 누굴까. 같이 산 지 몇 주 됐지만 왜 내게 저런 애착을 가질까. 그래도 저 아줌마의 얼굴을 보면 조금은 살고 싶단 생각도 든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뜨자 “정말 살려는 의지가 강한 아이”라는 수의사의 말이 들린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다. 얼마 전 그 일 때문에 머리를 크게 다친 모양이다. 혀는 축 늘어지고, 왼쪽 얼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짖을 수도, 달릴 수도 없다. 뇌를 다치면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다른 장기의 신경도 심각하게 손상됐단다. 다른 말은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단지 한마디가 내 가슴을 파고든다.

“앞으로 1년을 넘기기 힘들 겁니다.”

아줌마가 나를 꼭 껴안는다. 그래도 살았으니 됐다고 한다. 배가 고프다. 아줌마가 주는 죽을 물처럼 마신다.

○ 2010년 11월 말, 산 속에서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인근


눈을 떴다. 등산객들이 나를 쳐다본다. 무서워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다. 일주일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목이 타는 것처럼 마르다. 왼쪽 머리가 찢어지고 뼈는 밖으로 나왔다. 그냥 숨쉬고 있단 것만 느껴진다. 흘러나온 피가 눈을 찌른다. 굳은 핏덩이엔 벌레들이 기어 다닌다. 짖고 싶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처음 숨어 지낼 땐 조금은 움직일 수 있었다. 3일쯤 지나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산책로 부근에 누운 채 가쁜 숨만 몰아쉬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손가락질했다. 구더기가 끓고 냄새도 나는데 저걸 누가 안 치우냐면서. 아이들은 돌을 던졌다. 징그럽다고.

누군가 다가온다. 꼭 나를 해칠 것만 같다. 차라리 목숨이 끊어져 고통도 멈췄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병원. 거기엔 웬 여자가 있다. 누군가 나를 수술대에 올린다. 영양실조니 뭐니 하는 말이 오가더니 마취도 안 한 채 수술을 시작한다.

수술이 끝났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큰 병원으로 또 옮긴다. 영문도 모른 채 또다시 수술을 받는다. 악몽 같은 시간이다. 그래도 상태가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다.

며칠 전부터 내 옆을 지키던 여자가 말한다.

“조금만 더 회복되면 엄마 집으로 가자. 거기서 가족이랑 행복하게 살자.”

○ 2010년 11월 중순, 한적한 거리에서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인근


한 남자가 다가온다. 미소를 지으며 “예쁘게 생겼다”고 한다. 남자가 눈앞에서 소시지를 흔든다. 길을 잃은 지도 벌써 일주일째. 주인은 나를 내다버린 것일까, 아니면 길 잃은 나를 찾지 못하는 것일까.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런 내게 소시지 냄새는 너무나 매혹적이다. 입 안에 침이 고인다. 빈속에 위액이 나와 배가 쓰리다. 꼬리가 절로 흔들린다. 순간, 눈앞이 번쩍한다. 소시지를 흔들던 남자가 큰 돌을 들고 있다. 소시지를 들고 있는 손의 반대편, 등 뒤로 숨겨두었던 손이다. 다리가 풀린다. 그가 다시 돌로 나를 치려 한다. 본능적으로 피하지만 돌이 눈을 스친다. 한쪽 눈이 따끔거린다.

필사적으로 달린다. 무섭다. 절뚝거리는 다리가 야속하기만 하다. 그를 피해 야산 깊숙이 아무도 없는 곳까지 달리고 또 달린다. 너무 아프다. 더 멀리 가고 싶지만 다리가 움직이질 않는다. 그 사람은 대체 날 왜 때린 걸까. 어느 호젓한 산책로가 보인다. 그러고선 쓰러진다. 스르르 눈이 감긴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휴가철, 사람은 신나지만 견공들은 두렵답니다

휴가철입니다. 산이나 바다로 여름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맘때만 되면 불안해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견공’들입니다. 여름 휴가철인 7, 8월은 반려견(사람과 더불어 사는 개)이 가장 많이 버려지는 때입니다. 휴가기간 집을 비울 때 남에게 개를 맡기기 힘들뿐더러, 무더운 날씨 때문에 관리하기도 힘들다는 게 이유입니다. 지난 3년 동안 동물보호소에 들어온 유기견 3만3351마리 가운데 7월(3775마리)과 8월(3564마리)에 발생한 유기견이 전체의 22%를 넘습니다. 한 동물보호단체는 실제 집계되지 않는 수를 포함하면 한 해에만 10만 마리가 넘는 반려견이 버려진다고 합니다. 이들 중 일부는 보호소에 가지만 상당수는 안락사를 당하거나 보신탕집으로 끌려가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유기견의 눈으로 본 유기견의 세계를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주인공은 ‘사람이 죽이고, 또 사람이 살린’ 백구(白狗) 천상이입니다. 천상이는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사람에게 돌로 얻어맞아 뇌 손상을 입었습니다. 천상이의 ‘엄마’는 ‘내사랑 바둑이’를 운영하는 정경순 씨(50)입니다. 천상이 주변 사람들의 진술을 토대로 천상이 시각에서 일기 쓰듯 이야기를 재구성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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