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전격 사퇴를 발표한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 이날 오후 의원회관에서 자리를 마주한 그는 “뭐 그렇게 큰 그림을 그려놓고 수순을 밟는 것은 아니다”면서 “정치가 변화해야 하는 시기에 벽이 되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또 “대통령의 신뢰 상실이 집권당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 다음은 일문일답.
―대표직 사퇴는 내년 총선 판을 염두에 둔 것인가.
“한나라당이 변하고, 민주당도 변하고 있다. 선진당도 현상을 타파하고 변화를 해야 하는 위중한 시기에 와 있다. 근본적인 변화의 계기를 만들고 홀가분한 처지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지금 정치권이 너도 나도 변화를 얘기하게 되는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에 실망한 국민이 보수정권을 탄생시켰는데 임기 후반에 들어 보니 이 정권 역시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가 9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새로운 지도체제로 당이 재출발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어떤 부분이 특히 이 정권에 실망을 느끼게 했다고 보나.
“지금까지는 정치권이 잘 포장된 공약을 남발하면 통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7년 대선 때 농가부채 탕감 약속을 내놓았다. 이명박 후보도 세종시와 과학벨트 같은 것을 공약해서, 본인 표현대로 이득을 봤다. 국민이 이제는 그런 포장이나 속임수에 넌더리를 내고 있다.”
―4·27 재·보선은 여당뿐만 아니라 정치권 전체에 위기의식을 불러온 듯한데….
“신뢰의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강한 욕구가 표출됐다. 말 바꾸기나 거짓 약속은 반드시 응징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명박 정권의 위기를 넘어 보수의 위기라고 말하는 이도 많다.
“좌파정권 10년 집권 이후 선진화 시대로 가기 위해 정직 법치 신뢰라는 보수주의 가치를 지켜주는 정권을 기대했다. 막상 해보니까 ‘이러려면 뭐 하러 보수정권 뽑았느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대표는 경기 성남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결과에 이르러 다소 톤이 높아졌다. “보수의 텃밭인 분당에서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민주당이 어떤 당인가. 북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앞에서 종북적 시각을 나타낸 당 아니냐. 이제는 보수 간판이라 해서 국민이 선택해 주지 않는다. 제대로 해야 한다.”
―이 정부의 경제와 안보 정책 방향은 어떠한가.
“보수의 핵심가치를 너무 무시하고 있다. 초과이익 공유제라는 것은 빼앗아서 나눠주는 졸렬한 것이다. 아무리 여론의 호의적 반응과 대중영합이 필요하다 해도 최소한의 원칙은 지켜야 한다.”
―한나라당에 새 원내대표 체제가 들어선 뒤 추가 감세를 철회하고 전월세 상한제도를 도입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틀고 있다. 국민의 뜻에 부합하는 길이라고 보나.
“공정성과 약자에 대한 배려, 공동선의 추구는 ‘따뜻한 보수’가 추구하는 가치다. 다만 땅에 떨어진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를 회복하기 위해 입에 달콤한 선물처럼 쏟아 놓는 포퓰리즘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내년 총선에서 선진당은 생존할 수 있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우리가 기반으로 삼는 충청에서 그리 비관하지 않는다. 우리는 제3당의 위상과 입지를 지켜왔고, 앞으로도 지킬 것이다. 원칙과 정도(正道)를 벗어난 양당체제의 갈등 대립 속에서 원칙과 정도를 제시하고 목소리를 냄으로써 충청권이 양대세력의 각축장이 되는 것을 막아낼 것이다.”
―대표직을 버린 것은 심대평 국민중심연합 대표를 비롯한 충청권 제3세력의 결집을 위한 것인가.
“세력을 모으고 변화의 추진체가 되기 위해선 이회창이라는 이미지가 갖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는 다이내믹이 필요하다. 우리도 한 번쯤 모험을 해야 한다. 심 대표를 비롯해 원래 당을 같이했던 분들과 같이했으면 좋겠다는 제 뜻을 항상 전해 왔다.”
―내년 대선에는 출마하나. 같이 연대할 수 있는 세력은….
“대선 출마는 지금 얘기할 수 있는 계제는 아닌 것 같고…. 우리 당이 추구하는 보수적 가치를 공감하고 동의하는 세력이라면 배척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야권연대는 이번 재·보선뿐만 아니라 내년 총선 대선에서 재현될 것이 확실시된다. 보수대연합은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야권연합, 야권연대는 방향이 같은 진보다. 간판을 보수로 달았다고 해서 다같이 진정으로 보수의 가치를 추구하는 세력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한나라당에는 남북관계 기타 정책에서 민주당에 가야 할 사람도 있다. 지금 상태의 한나라당과 손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수 본류’로서 꼭 요구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허허, 국민을 절망시키고 좌절시킨 것을 하나하나 바꿔야겠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최소한 신뢰 회복을 위한 성의를 보여야 한다. 대통령의 신뢰 상실은 결국 집권당의 신뢰 상실로 이어지고 있다. 진지한 노력 없는 립서비스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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