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 다시 돌아온 ‘가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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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1일 12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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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나는 가수다' '위대한 탄생' 등 한국 대중음악 대폭발
●흘러간 '세시봉'도 대인기…노래 잘하는 가수 원해
●식상한 댄스그룹 보다는 이제는 정감 있는 진실성 소구


지난 10년 이상 한국 가요계는 '침체' '절망' '나락'…이란 극단적 표현을 입에 달고 살았다. 2000년을 전후해 MP3 유통이 급속도로 확산되며 음반 판매량이 급감했던 탓이다.

1990년대 중반 앨범을 내놓기만 해면 100만장 넘게 팔리던 변진섭 신승훈 김건모 등 대형가수들의 영광의 기억이 강렬했던 탓인지, 기획자와 뮤지션들은 바뀐 현실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가요계의 중심축이 10대 댄스 아이돌로 쏠리며 중견 가수들의 설 자리도 대폭 축소됐다.

한국 가요계를 장학한 댄스 아이돌은 10대 팬이라는 든든한 우군을 바탕으로 생존에 성공했지만 음악 소비층을 20대 이상으로 확장시키지는 못했다. 자연스레 한국의 음악시장에서 가수란 더 이상 노래하는 이들이 아니라 춤추고 웃기는 이들로 인식도 확산됐다.

그러나 최근 한국대중음악계는 판이하게 달라진 환경으로 조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다. 마치 1990년대로 돌아간 것처럼 음악성과 가창력을 중시하는 가수들이 속속 무대로 복귀해 팬들의 환호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 YG 양현석 "우리 가요계는 지금 전환점…"

\'슈퍼스타K2\' 최종 3인(허각 장재인 존박)은 노래잘하는 신인 가수의 재발견을 일깨웠다(동아일보 DB)
\'슈퍼스타K2\' 최종 3인(허각 장재인 존박)은 노래잘하는 신인 가수의 재발견을 일깨웠다(동아일보 DB)

그 조짐은 이미 지난해 최고의 문화상품으로 꼽힌 엠넷의 '슈퍼스타K'의 폭발적 인기에서 엿볼 수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일반인 참가자들이 흘러간 가객들의 노래를 멋지게 재해석해내자 시청자들이 이들의 '노래실력'에 주목하고 열광하기 시작한 것. 오토튠과 기계음이 난무하는 대중음악 시장에서 청량제를 발견했던 셈이다.

또한 지난 설 특집으로 방영된 MBC '놀러와' 특집방송에 참여한 1970년대 한국 대중문화의 상징인 '세시봉' 멤버들의 공연도 하나의 사건으로 꼽힌다. 이미 대중의 뇌리에서 잊혀졌다고 생각된 이들 공연이 마치 '브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공연처럼 폭발적 반응을 불러 일으킨 것. 더 놀라운 점은 10대와 20대 이들의 음악을 전혀 듣지 못한 이들마저도 윤형주나 송창식 이장희의 애절한 노래를 듣고는 단박에 "너무 좋다!"란 찬사를 연발한 점이다.

3월 7일 MBC의 새로운 주말 버라이어티 쇼 '나는 가수다'에서 이 같은 변화의 기운이 대폭발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3월 8일부터 온라인 음원사이트 차트를 정복한 노래는 '바람이 분다'(이소라) '꿈에'(박정현) 등 이들 정통파 가수들의 노래였다. 노래 잘하는 가수에 대한 열망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였다.

최근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는 '세시봉'으로 대표되는 변화된 현상을 놓고 다음과 같이 촌평하기도 했다.

"가요계는 지금 전환점에 섰습니다. 세시봉을 보면 그걸 알수 있어요. 가요 팬들 이 진짜 노래 잘하는 가수를 동경하고 좋아하기 시작한 겁니다."

과연 한국 대중음악계가 '눈으로 보는 음악'의 시대를 청산하고 '귀로 듣는 음악'을 갈구하기 시작한 것일까? 이 같이 변화된 트렌드를 추동한 세 가지 원인에 대해서 정리했다.

▶① 예능프로그램과의 결합

"부활의 노래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그냥 앉아서 보고만 있으란 말이냐?"

이 표현은 지금은 '위대한 탄생'의 멘터로 더 유명해진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 씨가 예능에 출연을 결심하던 당시 동료들에게 내뱉은 말이다. 뮤지션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우스꽝스러운 가발을 쓰고 망가지는 모습은 가요계의 금기 사항 가운데 하나였다.

'예능출연 금지'란 이른바 아이돌과 뮤지션을 구분해 주는 일종의 자존심의 표현이었다. 국내 로커들은 1980년대에도 음악인의 자존심 때문에 '대학가요제'에도 나가지 않을 정도로 꼬장꼬장했다는 얘기도 남아있을 정도다. 때문에 김태원의 도전은 어려운 결심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을 것이다.

결과는 알려진 대로 대 성공이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잠시 고생하기도 했지만 김태원과 '부활'은 이제 국내 최고의 밴드로서의 명성을 재확인했고, 각종 음악프로그램의 신설을 바탕으로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됐다.

MBC '나는 가수다'가 첫 선을 보이기 직전 가요계의 우려는 예상보다 훨씬 높았다. 과연 이미 최고의 가수로 공인받은 이들이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무엇인가란 의문이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 '나는 가수다'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니만큼 시청자들의 재미를 위해서 순위를 매겨 격렬한 찬반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위-박정현(22.5%), 2위-김범수(15%), 3위-김건모(14.5%), 4위-윤도현(12.5%), 5위-백지영(12%), 6위-이소라(11%), 7위-정엽(10%)…"

그러나 논란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대중들이 투표 순위에 집중하기 보다는 일요일 황금시간대, 우리가 잊고 있던 가수들의 최고의 명곡들을 행복하게 감상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에 열광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음악 팬들은 예능프로그램의 논란과 무관하게 황금시간대에 '탈락'이라는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출연해 자신의 대표곡을 성심성의껏 부른 가수들에게 고마움을 표출했다. 자연스레 음악 팬들은 유튜브나 음원사이트에 몰려가 이들의 '눈물나는 노래'들을 청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능프로그램 출연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예능을 활용하는가에 따라 반응이 천양지차로 갈린 셈이다.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은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뮤지션의 진가를 널리 알렸다(스포츠동아 임진환)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은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뮤지션의 진가를 널리 알렸다(스포츠동아 임진환)

▶② 오디션 통한 아마추어 스타 대거 발굴

"한국에 사는 중국동포만 50만 명인데…그의 등장은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죠."

최근 중국 동포들 사이의 최대 화제는 MBC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에 등장한 백청강(22)이라는 동포 청년이다. 방송 3개월 만에 그는 한국인들이 쉽게 알아보는 대중스타로 떠올랐고 그 점이 중국 동포들의 억눌린 감정을 자극한 것.

1992년 한중수교 이후 20년 가까이 위성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한국방송을 시청해왔지만 단 한번도 '조선족' 출신이 한국 대중스타로 떠오른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1월7일 '위대한 탄생' 중국 칭다오 편에 첫 출연한 백청강 씨는 "연변에서 36시간 기차를 타고 어렵게 도착했다"며 "고향 연변의 밤업소에서 노래를 하며 한국에서 가수가 될 꿈을 꿨는데 이번에 기회가 찾아왔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한국으로 일 나간 아버지가 보고 싶다"며 "함께 밥을 먹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내 많은 재중동포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현재 그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10여명이 겨루는 최종파이널 무대 진출이 확정된 상태다. 이밖에도 재일교포 권리세(20) 씨와 재미교포 데이비드 오(19) 씨 역시 예비스타 대열에 당당히 합류했다.

최근 가요계는 '오디션 열풍'에 휩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슈퍼스타K'나 '위대한 탄생'의 1등공신은 스타가 되기 위해 꿈을 좆는 오디션 참가자들의 신선미가 큰 역할을 했다. 그간 기획사와 방송사가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연습 받은 '아이돌 스타' 보다는 참신하고 노래 잘하는 일반인에게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한 것.

이른바 '숨은 고수'를 차근차근 성장시켜가는 '리얼리티 프로그램'과의 결합으로 방송횟수를 늘려가며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스타를 키워내며 넓어진 시청자들의 기호를 충족시켰다.

▶③ '볼거리' 보다는 '진정성' 원하는 시청자들

'위대한 탄생'은 당초 케이블TV의 히트작인 '슈퍼스타K'의 노골적인 복제품이란 혹독한 평가 속에 출발했다.

그러나 방송 첫 해만에 공중파가 지닌 노련미와 서바이벌 형식의 오디션 프로그램의 박진감을 적절하게 조화시키며 최고의 문화아이템으로 부상했다. 3월 4일(14회) 전국 시청률이 16.4%(TNmS조사)에 이르렀고 수도권 시청률은 이미 23%에 육박하며 슈퍼스타K를 거의 따라잡은 것.

슈퍼스타K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가수 이문세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유사 오디션 프로그램에 질려 있던 터라 별 기대 없이 봤는데, 나중엔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모른다…저의 선입견이 죄송합니다"라고 글을 남겨 화제가 됐다.

'위대한 탄생'의 1등공신은 스타가 되기 위해 꿈을 좆는 오디션 참가자들의 신선미도 크지만 평범한 원석에서 특별함을 뽑아내는 심사위원들의 공도 적지 않다. 매서운 스승을 자임한 이들의 강렬한 독설과 진심어린 교육법이 더해지며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것.

당초 진부한 설정으로 논란이 된 '멘터(스승)-멘티(제자)'란 일방적 상하구조가 감동코드로 변한 데에는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활약 중인 그룹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의 공도 크다.

그는 최종 탈락하는 제자들에게까지 마지막 무대를 제공하며 "난 개인적으로 '위대한 탄생'이 끝난 뒤의 너희들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제자들이 행복하게 음악을 하면서 살 수 있기를 진심으로 갈구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눈물샘을 자극했다.

문화평론가 최영일은 "슈퍼스타K의 심사단이 단순히 평가에 그쳤다면 '위대한 탄생'은 탈락 후보까지 배려하며 인간적 감동을 극대화하며, 최근 예능프로그램에 있어 '진정성'이 중요한 화두임을 재확인시켰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한국대중가요(케이팝)에 매료된 다수의 외국인들이 참가해 한류 확산에 대한 국민적 자긍심을 제고했을 뿐만 아니라, 음악 산업에 대한 은밀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는 평가다.

오디션에 대한 관심이 사회 전방위로 확산되며 MBC는 아나운서, SBS는 탤런트를 리얼서바이벌 방식으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아예 누리꾼들은 정치권에 대한 식상과 반감을 "대통령 후보선출도 '위대한 탄생' 방식으로 치러보자"고 제안할 정도다.

오디션의 인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대중들의 관심이 '쇼'가 아닌 '진정성'을 갈구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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