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이 책]지혜와 통찰력의 꽃, 중년 뇌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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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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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
바버라 스트로치 지음·김미선 옮김 332쪽·1만5000원·해나무

이정모 성균관대 명예교수(심리학)
이정모 성균관대 명예교수(심리학)
지금까지 세계의 40대 이상 중년층을 사로잡아 왔던 착각 중 하나는 ‘중년의 뇌는 쇠퇴하며 그 인지기능은 20대보다 못하다’는 부정적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중년의 뇌는 20대 뇌보다 더 낫고 인지기능도 더 좋다’는 발상의 대전환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20세기 중반 신경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나이가 들어 갈수록 사람의 기억은 빠르게 쇠퇴하고 주의가 쉽게 흩어지는 등 인지적 기능이 나빠진다’는 관점이 정착돼 왔다.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현상, 즉 다른 사람의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 등의 상황을 겪은 중년과 그 주변 사람들도 이런 부정적 관점을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러한 부정적 관점이 인지적 착각이었고 틀린 신화였음이 많은 신경과학자와 심리학자의 실험과 조사 연구 결과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2002년 인지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 교수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사유의 요점은 ‘인간의 판단과 결정의 인지과정은, 즉 사고는 항상 완벽한 합리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편향적이며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일상에서 나타나는 기억력의 부분적 쇠퇴에 대해서도 우리는 소수의 부정적 사례를 쉽게 일반화하고 확대 해석해 ‘중년의 뇌 기능은 나쁘다, 쇠퇴만 한다’는 부정적 편향적 사고, 즉 착각에 사로잡혀 왔다.

그러나 많은 뇌연구자는 (대다수는 스스로 반신반의하면서) 수많은 피험 동물과 사람들의 두뇌 변화, 인지기능의 변화를 개체의 연령별로 추적해 연구해 왔다. 그런데 그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인간 중년의 뇌는 20대 못지않은 인지기능을 나타낸다. 아니, 중년의 뇌는 20대의 뇌보다 더 낫다. 나이가 들어가는 중년의 뇌는 20대의 뇌에 비하여 정보처리의 속도에서, 세부 사항의 기억의 정확성에서, 주의력 등에서 다소 뒤처질지는 몰라도 다양한 경험을 기존의 기억이나 지식과 연결하여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20대 뇌가 전혀 따라오지 못하는 우월성을 지니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이나 일에 대하여 판단하고 종합하는 능력에서, 상황의 핵심과 요점을 파악하고 기억함에서, 그와 관련된 언어 능력, 논리적 추리, 통찰력 등에서 중년의 뇌는 20대 뇌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긍정적 모습을 보인다. 더욱 융합적이고 창의적인 뇌가 되는 것이다. 20대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과 다른 ‘인지적 비축분’이 생겨나는 것이다. ‘중년의 위기가 존재한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절대로 없다. 우리 모두의 착각일 뿐’이라고 이 책은 주장한다.

저자 바버라 스트로치는 “중년의 뇌가 두각을 나타내는 부분은 판단력, 종합능력, 어
휘력, 직관, 통찰력 등이다”라고 설명한다. 중년의 뇌는 신속하게 요점을 이해하며 젊은 동료들보다 더 빨리 논의의 핵심을 파악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사진 제공 해나무
저자 바버라 스트로치는 “중년의 뇌가 두각을 나타내는 부분은 판단력, 종합능력, 어 휘력, 직관, 통찰력 등이다”라고 설명한다. 중년의 뇌는 신속하게 요점을 이해하며 젊은 동료들보다 더 빨리 논의의 핵심을 파악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사진 제공 해나무
인간의 뇌는 일종의 정보처리 시스템이다. 그런데 처리해야 할 정보가 너무 많아지면, 즉 정보처리의 부하가 걸리면 이 시스템은 잘 작동할 수 없다. 그런 경우에 가능한 대안은 정보처리 전략을 바꾸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기나긴 진화의 역사 과정에서 상황에 맞게 정보처리 전략을 변화하여 적응하는 능력을 발달시켜왔다.

20대의 뇌는 마주치는 상황의 종류가 비교적 적고 또 단순하다. 그래서 자극 상황의 세부를 감각적으로 정확히 기억하며 빨리 처리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중년의 뇌는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며 다양한 상황을 맞게 되고, 해야 하는 일의 종류도 젊을 때와 다르다. 특히 종합적 판단, 추론이 주가 되는 상황이 많다. 그래서 중년의 뇌는 20대와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 세세한 정보의 기억보다는 전체적 그림의 파악, 과거 경험이나 지식과의 연결, 종합적이고 창의적인 판단 등이 중요하게 된다.

그런데 인간의 뇌는 처리 용량이 제한되어 있다. 모든 종류의 멀티태스킹을 할 수 없다. 선별을 해야 하고 뇌의 다른 부분이 작동해야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 중년의 뇌가 발전시킨 정보처리 전략은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사람의 이름 같은 세세한 부분이나 에피소드에 대한 기억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전체적 판단, 핵심 요점의 기억, 융합과 종합의 인지능력이 더 잘 작동하게 하자. 젊을 때는 자극의 종류에 따라 좌뇌 우뇌 중 어느 하나만 주로 가동했는데 이제는 좌우뇌를 모두 가동하여, 특히 우뇌의 감성적 처리를 살려 상황에 대한 정보처리를 하자.”

이는 즉 20대와는 다른 인지기능의 우월성을 살리자는 전략이다. 물론 뇌가 이렇게 말하며 생각했다는 것이 아니라 의식 이하 수준에서 자연적으로 그러한 정보처리 전략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지기능 측면에서 중년의 뇌는 20대의 뇌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설명이다.

“어른들이여, 이제 긍정적 방향으로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하는 때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뇌기능이 쇠퇴한다는 것을 당연한 진실로 받아들이는 착각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한다!” 수많은 뇌 연구자의 연구결과와 인터뷰를 종합해 이 책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다.

이 책이 현재 인지과학에서 막 떠오르는 관점인, 몸으로 활동하는 것의 중요성, 뇌를 넘어서 환경에 확장되어 작동하는 인지기능의 중요성에 대한 입장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점은 있다. 그러나 ‘어른들’ 모두에게 중년 뇌기능의 긍정적 측면, 즉 나이 드는 뇌의 ‘좋음’에 대해 발상의 대전환을 가져오게 하는 책이다.

이정모 성균관대 명예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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