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우린 너무 성급했다… 영화 ‘돌이킬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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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일 1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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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영 감독의 신작 '돌이킬 수 없는'은 아동 실종사건을 다룬 영화다. 김태우(39)가 애지중지 키우던 7살 딸을 잃어버리고 실의에 빠진 아버지로, 이정진(32)이 유력한 용의자인 동네 총각으로 나온다. 두 사람은 피해자와 용의자로 극한 대립을 한다.

소재만 놓고 본다면 '돌이킬 수 없는' 역시 요즘 우리 영화계에 유행처럼 번진 스릴러 복수극으로 보인다. '심야의 FM', '아저씨', '파괴된 사나이' 등 먼저 개봉한 영화들이 줄줄이 힘없는 여자아이를 범죄의 희생양으로 삼는 스릴러물이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사라진 후 범인은 있고 진실은 없다!'라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홍보 문구와 김태우, 이정진의 얼굴이 대립하듯 크게 나온 포스터도 장르적 문법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듯하다. 이쯤 되면 '에이, 또 유괴극이야?'라고 다른 영화로 발을 돌리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정황상 그가 범인으로 보인다 해도, 무죄 추정의 원칙을 함부로 깰 수는 없다. 영화 \'돌이킬 수 없는\'은 한 전과자에 대한 사회적 살인을 이야기한다.
정황상 그가 범인으로 보인다 해도, 무죄 추정의 원칙을 함부로 깰 수는 없다. 영화 \'돌이킬 수 없는\'은 한 전과자에 대한 사회적 살인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장르적 재미 보다는 '메시지'에 치중한 영화였다. 영화는 끊임없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이가 사라졌습니다. 당신의 마을에 아동 성범죄 전과자가 산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전과자가 이웃에 있었다는데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해?"

노충식(김태우 분)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꽃 같은 외동딸 미림을 애지중지 키우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아빠다. 그런데 어느 날 놀러 나간 아이는 말 그대로 사라진다.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나서 이 잡듯이 뒤지지만, 목격자도 단서도 없이 시간만 흘러간다.

생업까지 포기하고 아이를 찾던 아빠는 우연히 경찰서에 들렀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듣는다. 얼마 전 옆집에 이사 온 총각 유세진(이정진)이 아동 성범죄 전과기록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너무 착해 어눌하기까지 했던 옆집 총각은 이제 아빠의 눈에는 '악마'로 보이기 시작한다. 평소 친분이 있던 형사 형님까지 원망한다. "이런 사람이 이사를 왔다면 미리 알려줬어야지!"
7살 딸아이가 실종되자 작은 실마리라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아버지 충식은 얼마 전에 이사온 남자, 세진에게 전과기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7살 딸아이가 실종되자 작은 실마리라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아버지 충식은 얼마 전에 이사온 남자, 세진에게 전과기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전거 대여점을 운영하며 조용히 살고자 했던 세진은 그 날 이후로 악몽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충식이 그의 전과 기록이 담긴 전단을 온 동네에 뿌려댔기 때문이다. 어떤 물증이나 목격자도 없지만 공동체 의식이 강한 마을 사람들은 그를 범인으로 몬다. 어떤 사람은 죽은 애완견을 파묻는 세진을 보고 아이 시체를 묻는다고 신고하기도 한다. 세진만 못살게 구는 것이 아니었다. 어린이집 교사였던 세진의 여동생(임성언)과 세진의 어머니(김창숙)까지도 세간의 괄시를 받는다.

그러다가 부패한 아이의 시신이 발견된다. 경찰은 유세진을 범인으로 단정하고 증거를 찾고 증인을 확보하려 총력을 기울인다. 세진과 비슷한 남자를 얼핏 본 것 같다는 목격자도 나온다. 하지만 목격자는 아이와 함께 있던 남자가 세진인지 확실하지 않다고 진술을 번복했고 세진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영화는 제목처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실족사'라는 아이의 부검 결과가 나온 건 그 이후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반복되고 있을 '돌이킬 수 없는' 일…

이쯤 되면 세진의 과거 전과도 실제로 저지른 일인지, 아니면 주변에서 이 어눌한 청년을 범죄자로 몰고 간 것인지도 모호해진다. 세진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매끄럽게 대처할 만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항변 한번 해보지 못한 세진이 영화의 끝 부분에 토해내듯 던진 한 마디는 슬프다. "이번엔 정말 잘해보고 싶었어!"
세진은 동네 사람들에게 범인으로 몰리며 온갖 수난을 겪지만 끝까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세진은 동네 사람들에게 범인으로 몰리며 온갖 수난을 겪지만 끝까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영화가 아동 성범죄 가해자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차분히 우리가 너무 성급했던 것은 아니었는지를 물을 뿐이다. 아동실종이라는 사건을 통해 모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는 비극적인 상황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그래서 영화는 지난달 폐막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사회에 내재한 다양한 이슈를 현실감 있게 담아낸 '한국영화의 오늘 : 파노라마'에 '시'와 함께 초청되기도 했다.

박수영 감독은 언론 시사회에서 "처음 시나리오 받고 장르적 재미보다는 담고 있는 이야기 자체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사명감을 느꼈다"며 "만들면서도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해서 이 영화가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일으키게 톤을 잡는데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그는 '성범죄자 명단공개' '전자발찌'를 반대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런 메시지를 담았다면 노충식을 아예 악인으로 그렸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아동 성범죄에 국한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게 너무 성급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길게 생각해서 판단해도 늦지 않는다. 그게 이 영화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얘기다. 이런 얘기들이 영화를 통해 충분히 담론화 되길 원하고, 또한 사람들이 주변에서 비슷한 사건을 접했을 때 '침착하자'라고 나서서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데 기여했으면 한다."

영화의 제목 '돌이킬 수 없는'은 중의적이다. 세진의 과거 아동성범죄 전과가 그렇고, 마을 사람들의 섣부른 '낙인찍기'가 그렇다. 엄한 사람을 '잡은' 노충식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될 것이다. 4일 개봉.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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