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총리 물러난다]MB-정총리, 사흘전 독대서 ‘석별의 정’ 나눈듯

  • Array
  • 입력 2010년 7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 사퇴-유임 논란 1개월

이명박 대통령(오른쪽)과 정운찬 국무총리가 27일 저녁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청와대 본관 복도를 함께 걸어나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오른쪽)과 정운찬 국무총리가 27일 저녁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청와대 본관 복도를 함께 걸어나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운찬 국무총리는 28일 오후 40년 은사(恩師)인 조순 전 한국은행 총재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식사를 함께하자고 제의했다. 시내 모처에서 단둘이 만난 자리에서 정 총리는 “사임하겠다는 결심이 섰다. 선생님에게 미리 알려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 총리는 29일 아침 임태희 대통령실장에게 “오후에 사의표명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뜻을 전했고, 임 실장은 이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지난달 29일 세종시 수정안의 국회부결 이후 ‘사퇴냐, 유임이냐’를 두고 엇갈린 추측을 낳았던 정 총리의 거취가 정리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정 총리는 곧은 학자답게 총리 취임 이후 어떤 정치적 고려나 개인적 이해관계를 넘어 오로지 국가미래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헌신해왔다. 경제와 교육 이외에도 사회의 그늘진 곳, 어려운 이웃에게 관심이 많아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많은 기여를 해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며 높이 평가했다고 홍상표 홍보수석이 전했다.

앞서 정 총리는 27일 국무회의를 전후로 이 대통령과 독대했다는 것이 청와대 측 설명이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7·28 재·보궐선거를 하루 앞둔 시점에 정 총리가 자신의 거취를 대통령과 매듭지은 것 같다”는 관측이 흘러나왔다. 정 총리는 그날 저녁 도시락 국무회의를 마친 뒤 다른 국무위원들과 막걸리를 마셨으며 표정이 밝았다고 총리실 관계자는 전했다.

사임 여부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는 동안 청와대 인사라인은 총리 사퇴에 대비해 복수의 총리후보군에 대한 검증작업을 진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29일 “여러 후보를 놓고 전에 없이 강도 높은 검증을 진행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3배수로 압축됐다”며 구체적 이름이 돌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의 장고(長考)형 인사 방식이 그렇듯 정 총리의 거취 역시 세종시 수정안 부결 이후 무성한 추측과 일화를 남겼다.

정 총리는 그동안 확인된 것만 세 차례나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달 3일 6·2지방선거 참패 후 이 대통령을 만나 “제 거취가 일하는 데 부담이 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된 이튿날인 지난달 30일에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수정안 설계 책임자로서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북중미 순방에서 돌아온 당일인 이달 3일엔 이 대통령을 만나 ‘사직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수락이나 반려 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채 봉투를 옆으로 밀어놓으며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당시 “세종시 부결이 왜 총리 책임이냐”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도 청와대 내부에서 나왔다.

그러던 중 이달 6일에는 청와대 핵심관계자가 “정 총리가 금주 공식적으로 사퇴할 것 같다”고 기자들에게 말해 논란은 폭발했다. 정 총리 측은 “모독이다”라며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고, 이 대통령도 “누가 이런 말을 하고 다니느냐”며 역정을 냈다.

정 총리는 그후 ‘철저한 국정수행’을 강조하면서 강력한 총리직 수행 의지를 내비쳤고 유임설이 급속히 퍼지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비공개로 국무총리 공관을 찾아 2시간 30분 동안 오찬을 나눈 것도 그즈음이다. 오찬 자리는 내내 웃음이 오갈 정도로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정 총리는 재·보선 다음 날을 선택해 사임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청와대 참모들은 정 총리의 거취가 엎치락뒤치락했던 과정에 대해 “이 대통령은 정 총리에게 마음의 빚을 느끼고 있었고, 마음의 빚을 덜어가는 과정을 거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