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 어른의 취향 ‘김탁구’, 언니들의 선택 ‘나쁜남자’, 아저씨는 ‘로드넘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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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2일 14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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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왕 김탁구 포스터. 사진제공 KBS
제빵왕 김탁구 포스터. 사진제공 KBS
KBS2TV '제빵왕 김탁구'(이하 '김탁구')가 2주 연속 3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수목드라마 시장에서 독주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경쟁작인 SBS '나쁜남자'와 MBC '로드넘버원'의 시청률은 한 자릿수로 내려앉았다.

'김탁구'의 선전은 의외다. 애초 수목극 경쟁의 양상은 소지섭, 김하늘, 윤계상 주연에 130억 원을 들여 100% 사전 제작한 '로드넘버원'과 김남길, 한가인, 오연수가 나오는 멜로 '나쁜 남자' 2파전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김탁구'의 주인공으로 신인 윤시윤과 주원이 캐스팅 됐을 때는 KBS가 버리는 카드 삼아 '김탁구'를 편성했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김탁구'는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뜬 기특한 드라마인 셈이다.

'김탁구'의 선전 비결은 의외로 단순하다. 이 시간대에 TV 드라마를 많이 보는 중장년층을 붙들어두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밤 10~11시에 TV 모니터 앞에 앉아 본방을 사수하는 젊은이들은 별로 없다.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거나, 집에 있더라도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나쁜 남자'는 20~40대 여성, '로드넘버원'은 30~50대 남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결국 화려한 볼거리나 해외로케이션, 작품의 완성도 보다는 방송사의 편성 스케줄에 충실한 '어른'들의 입맛을 얼마나 충족시키느냐가 대박과 쪽박을 가른다는 얘기다.

▶ 어른의 취향 '김탁구', 통속적이라 더 달콤한…

시청률 조사회사인 AGB닐슨이 7, 8일 수목드라마의 성별 연령별 평균 시청률을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드라마의 주요 시청층은 여자, 연령별로는 40대 이상 중장년층이다. 50대 여성이 35.1%로 시청률이 가장 높고, 다음으로 60대 이상 여성이 29.6%, 40대 여성 28.5%, 60대 이상 남성 23%, 30대 여성 21.8%, 50대 남성 20.5% 순이었다.

같은 기간에 '김탁구'를 본 사람들 10명 중 4명은 40대 이상 여성(41.1%)이었다. 주부들이 많이 보는 아침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불륜, 혼외 자식, 고부 갈등이 '김탁구'에는 고루 등장한다. 탁구의 친모(전미선 분)가 겁탈당할 뻔하다가 납치되는 장면이 나와 '막장 드라마'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이 역시 아침 드라마의 인기 흥행 요소로 주부 시청자들을 유인하는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6·25세대인 60대 이상 남성 비율도 7.5%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김탁구'가 1960~70년대 가난했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데다 주인공이 만드는 빵도 바게트가 아니라 크림빵, 소보루빵, 단팥빵 등 '어르신'들이 즐겨 먹는 종류이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1999년 방영된 MBC 인기드라마 '국희'와 비슷하게 빵 만드는 이가 주인공인 시대극이라는 점도 어른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다만 알려진 것과는 달리 주인공 탁구는 실제 인물인 모 기업의 대표와는 관계가 없다. 앞으로 탁구는 제빵업계 일인자가 아니라 제빵 명장으로 성장한다.
나쁜남자 포스터. 사진제공 SBS
나쁜남자 포스터. 사진제공 SBS

▶ 언니들의 선택 '나쁜남자', 은밀한 사랑 인터넷에서 흥행

'나쁜남자'를 보는 사람들의 남녀 성비는 27대 73으로 여자가 압도적이었다. 특히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 중 20~40대 여성의 비중이 47.9%로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 드라마는 어린 시절 재벌가 해신그룹에 입양됐다가 파양된 한 남자가 치밀한 두뇌와 잘생긴 외모를 앞세워 복수한다는 미스터리 멜로다. 대사보다는 은유와 상징, 스타일리시한 이미지로 승부하는 이형민 감독의 연출 성향은 어리거나 나이 든 세대가 소화하기에는 다소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여자들의 로망인 '비담' 김남길이 주인공 심건욱으로 나와 한가인과 오연수를 상대로 아슬아슬한 러브 게임을 벌인다는 설정은 여성들의 시선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김남길이 오연수와 애정 행각을 벌일 때마다 시청률도 덩달아 올라간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일본 톱스타 기무라 타쿠야가 주연한 '하늘에서 일억 개의 별이 내리면'과 유사하다는 점도 일본 드라마에 호감을 느끼는 20대~40대 여성을 끌어 모으는 비결이다. 일본 NHK의 투자를 받아 현지 로케이션을 진행한 이 드라마는 5~6회 내내 일본어 대사가 나오기도 했다.

'나쁜남자'는 월드컵 전만 해도 '김탁구'와 시청률이 비슷했지만 요즘은 마니아 드라마의 전철을 밟고 있다. 시청률은 낮지만 방영 직후엔 포탈 사이트의 검색어 상위에 오를 정도로 화제를 낳는 드라마다. 다양한 여자들을 자유자재로 유혹하는 김남길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의 남자 주인공과 자주 비교된다. 남자 누리꾼이 많이 모이는 엠엘비파크 등에서는 김남길식 작업 노하우를 주고받는 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로드넘버원 포스터. 사진제공 MBC
로드넘버원 포스터. 사진제공 MBC

▶ 아저씨들은 '로드 넘버원', 공성전 게임 능가하는 전쟁 신

'로드 넘버원'은 남자들이 많이 보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 중 32.5%가 30~50대 남자들이었다. 남녀 성비를 봐도 49대 51로 남자가 뒤지지 않았다. 드라마는 주로 여자들이 많이 보는 경향을 감안하면, 그만큼 남자들이 '로드 넘버원'에 주목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드라마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사랑은 관두고 우정과 전투에만 집중하라" "전투 장면을 보려면 멜로를 20분간 참고 봐야 한다. 너무한다"며 멜로에 치중하는 제작진을 성토하는 글이 많이 올라와 있다.

이장우(소지섭)-김수연(김하늘)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룬 초반과 달리 5~6회에서 동물적인 감각을 타고난 이장우와 육군사관학교 출신 엘리트 장교 신태호(윤계상)의 경쟁이 본격화되며 시청률도 다소 상승했다. 특히 1소대장 태호와 2소대장 장우가 낙동강 도하를 두고 서로 다른 전략으로 부대원을 이끄는 대목은 남성 시청자들로부터 삼국지나 공성전 게임을 능가하는 장면이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승리 만큼이나 전우애를 강조한 것도 '로드 넘버원'의 미덕. 최민수는 전쟁 속에서도 부대원을 위해 물러설 줄 아는 중대장 윤삼수 역을 맡아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드라마 밖에서도 '호재'가 있었다. 절친 박용하가 자살하자 뜬눈으로 장례식장을 지키고 통곡하는 소지섭의 모습이 '의리남' 장우와 오버랩되며 좋은 인상을 남긴 것이다.

▶ 마준의 출생의 비밀, 건욱의 복수혈전, 수연의 아이…향후 관전 포인트

'김탁구'가 1위 자리를 놓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아직 경쟁이 끝난 건 아니다. 세 드라마 모두 볼거리가 한참 남아 있다.

'김탁구'는 탁구와 마준이 경쟁하며 뛰어난 제빵 명장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펼쳐보일 예정이다. 유경(유진)을 둘러싼 탁구와 마준의 삼각관계도 짜릿하게 그려진다.

무엇보다 마준의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가 가장 궁금한 대목이다. 마준이는 서인숙(전인화)과 한승재 비서실장(정성모)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인숙은 "다른 남자의 씨가 아니면 아들을 못 낳을 것"이라는 점쟁이 말에 한 실장과 동침한 뒤 마준이를 낳았다. 마준이 자기 아들인줄 철썩같이 믿고 있는 한 실장은 탁구를 내쫓고 탁구 엄마를 죽이려 하는 등 아들의 장래에 걸림돌이 될만한 것들은 모조리 치워버리려고 애쓴다. 그러나 제작사 관계자는 "점쟁이 말이 마준이가 한승재 아들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못된다. 인숙의 남편 구일중(전광렬)의 아들일 수도 있다"며 "현재로선 작가와 감독 두 분만 알고 배우들에게도 극비로 하고 있지만 곧 출생의 비밀이 밝혀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나쁜남자'는 주인공 심건욱이 철옹성 같은 해신그룹을 상대로 복수를 해나가는 과정을 그려나갈 예정이다. 미국에 대학에서 기업인수합병을 전공한 건욱은 N.K 건축사무소라는 유령회사를 차리고 해신가의 장남 홍태균의 투자를 유도한다. 외국계 헤지펀드 세력을 등에 업은 건욱이 해신그룹을 이리저리 요리해 경영권을 빼앗을 것으로 점쳐진다. 건욱이 해신 가의 장녀와 차녀를 유혹해서 버리고 자신을 신뢰한 홍 회장과 태성까지 배신하는 과정도 기대할 만하다. 감독이 외화 '원초적 본능' 못지않게 멋지게 뽑아내겠다고 약속했던 오연수와 김남길의 에로틱한 베드신도 아직 남아 있다.

'로드 넘버원'은 이미 촬영이 끝났다. 100% 사전 제작인 만큼 배우들이 쪽대본을 받아들고 연기하느라 완성도가 떨어질 일은 없다. 초반 저조한 시청률에도 소지섭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고 평가해달라"고 큰소리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 작품 중 가장 늦게 방영을 시작한 '로드 넘버원'으로선 그만큼 풀어낼 이야기도 많다. '타고난 군인' 장우와 '엄친아' 태호의 선의의 경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또 경쟁자인 두 사람이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생사를 뛰어넘은 진한 우정을 나누는 장면도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할 전망이다.

장우의 아이를 임신하고 인민군과 함께 북으로 끌려간 수연이 전쟁에서 끝까지 살아남을지, 이 아이를 장우와 키울지 태호와 키울지도 관심거리. 극 초반에 태호의 노년 역을 맡은 원로배우 최불암이 이장우의 이름이 새겨진 전사자 추모 묘비 앞에서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며 지난날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왔다. 장우의 생사와 태호가 말한 '약속'이 무얼 뜻하는지 궁금한 것도 이 드라마를 끝까지 봐야 하는 이유이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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