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얼음 언 논밭서 훈련… 후배들아 고맙다”

  • Array
  • 입력 2010년 2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왕년의 한국 빙상 국가대표 김귀진-이익환 씨 감격의 회고

1960년대 국가대표로 뛰며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1968년 프랑스 그르노블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 출전했던 김귀진 씨. 1963년 훈련 때 신었던 스케이트화를 내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성남=홍진환 기자
1960년대 국가대표로 뛰며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1968년 프랑스 그르노블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 출전했던 김귀진 씨. 1963년 훈련 때 신었던 스케이트화를 내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성남=홍진환 기자
밴쿠버 겨울올림픽에 출전 중인 이상화가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17일 오전. 김귀진 씨(65·여)는 자신이 국가대표 선수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짜릿함을 느꼈다. 김 씨는 아파트 아래층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금메달 소식에 펄쩍펄쩍 뛰며 기뻐했다. 그는 “내가 금메달을 딴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의 활약상에 누구보다 감격해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국가대표 ‘올드보이들’이다. 김 씨는 1960년대 한국 빙상계를 주름잡았던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였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국가대표가 된 뒤 10년간 정상을 지켰다. 김 씨는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1968년 프랑스 그르노블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에 국가대표로 참가했다.

티끌 하나 없는 매끈한 빙판을 질주하는 선수들을 보면 김 씨는 50여년 전 운동하던 때가 생생하다. 당시 국내에는 빙상장이 하나도 없었다. 겨울에 얼음이 얼기 시작하면 국가대표 선수들은 강원 철원군 오지리나 경기 포천시 산정호수를 찾았다. 산정호수는 물이 맑고 산에 있어 오랫동안 깨끗하게 얼음이 얼어 있어 훈련장소로는 최고였다. 한 번은 산정호수가 녹아 강원 홍천군으로 캠프를 옮긴 적도 있었다.

전지훈련을 가지 않을 때는 얼음이 언 논밭에서 연습했다.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공식 경기조차 한강 다리 밑에서 열리던 시절이었다. “낮에는 얼음이 녹으니 오전 4시 반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마포까지 버스를 타고 갔어요. 아랫목에서 따뜻하게 덥힌 스케이트화를 품에 안고 논두렁을 걸었지요.” 얼음물이 질척한 논두렁에 빠져 온몸이 젖기도 일쑤였다. 세계 대회에서 만난 북한 선수들과의 은근한 신경전도 추억이다. 이규혁의 아버지인 이익환 씨(64)는 1970년 핀란드 로비니에미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북한의 김진국과 자존심 대결을 펼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당시만 해도 남북 간 대결만큼은 반드시 이겨야 했습니다. 북한 선수들이 더 우수한 성적을 보였는데 죽자고 달려 이겼지요.” ‘논바닥에 물을 채워’ 어렵게 훈련을 했던 세대인 그는 “아들이 올림픽 메달을 위해 오랫동안 고된 훈련을 참아낸 과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이번 올림픽에서 아들의 실패가 누구보다 안타까웠다고 했다. “내가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본인은 어떻겠어요.”

하지만 이 씨는 “아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1960년대 스피드스케이팅의 바닥을 다진 자신의 노력이 아들의 세계선수권 제패에 이어 모태범, 이상화의 금메달로 열매를 맺었기 때문이다. “태범이가 메달을 못 땄으면 국민들이 얼마나 아쉬웠겠어요. 업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예뻐요. 과거 우리들이 운동하던 시절에는 세계 정상은 꿈도 못 꿀 일이었는데 후배들이 세계를 제패했으니 너무 뿌듯합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