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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초정, 빼어난 문장가이자 진정한 국제인”

입력 2010-02-24 03:00업데이트 2010-02-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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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파 실학 대표학자 박제가 ‘정유각집’ 첫 완역 주도한 정민 교수
《“초정(楚亭) 박제가(사진)는 동국(東國)에서 문장으로 빼어난 자다. 그 사람은 키가 작고 왜소하지만 굳세고 날카로우며, 재치 있는 생각이 풍부하다.”(청나라 학자 이조원) ‘북학의’의 저자로 18세기 조선 북학파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박제가(1750∼1805). ‘북학의’를 제외한 초정의 시와 산문을 모두 담고 있는 ‘정유각집’이 최근 번역 출간됐다. 이 문집은 영인본이 세 차례 만들어졌으나 완역은 처음이다. 번역본(돌베개)은 시 1721수, 산문 123편을 상, 중, 하 세 권에 나눠 실었다.》

박제가의 시문을 모은 ‘정유각집’을 처음으로 완역한 한양대 정민 교수. 변영욱 기자
○ 학자 7명이 6년간 정성 들여
이번 번역 작업에는 정민 한양대 교수를 비롯해 이승수 한양대 교수, 박수밀·이홍식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 박종훈 전남대 호남한문학연구소 연구원, 황인건·박동주 한양대 국문학과 강사 등 7명이 6년간 정성을 들였다.

2004년에 처음 작업을 시작해 2006년에 끝냈으며 각주를 달고 수정하는 데만 4년이 더 걸렸다. 각종 고사에서 전거(典據)를 끌어오는 게 이 시기 글쓰기의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23일 인터뷰에서 “번역 전에는 왜 번역이 안 됐나 의아했는데 번역을 하며 너무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끊임없이 주석이 추가돼 나중에는 책을 보기도 싫을 정도였는데 마침내 출간하게 돼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고사 인용 글쓰기가 당시 특징… 수많은 원전 찾아내느라 고생”

○ 기인(畸人), 국제인, 자존심이 강했던 문인
‘정유각집’에는 박제가가 왕에게 올린 상소문,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시, 일찍 죽은 둘째 딸에게 바친 글,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 등이 실렸다. 박제가는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스로를 “조선의 기인(畸人·세속과는 맞지 않지만 하늘과는 화합하는 사람)”으로 칭했다. 정 교수는 “서얼 출신으로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위치 지었던 그의 독특한 사유세계가 젊은 시절의 글에서부터 보인다”고 말했다. 20대 초에 지은 산문 ‘바다의 고기잡이’에서는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는 어부들을 보고 “어쩌다 보니 물고기가 되고, 어쩌다 보니 내가 된 것이다”라며 인간 중심의 시각을 벗어난 상대주의적 사고를 떠올리기도 했다.

정 교수는 “박제가가 지은 회인시(懷人詩·사람을 그리며 지은 시)만 100수가 넘는데 일본이나 중국의 학자를 만난 뒤 지은 시가 교유의 폭과 깊이에서 진정한 국제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제가가 교유한 학자는 청나라에서만 100명이 넘었다.

자존심이 강했고 벼슬살이를 하면서도 윗사람에게 굽히지 않았던 박제가의 성품도 읽을 수 있다. 정조가 1792년 문체반정 당시 박제가를 견책하며 받은 자송문(自訟文·반성문)인 ‘비옥희음송(比屋希音頌)’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 글에서도 “지금 사람들은 신의 반 토막 원고조차 본 적이 없으면서, 무엇으로 신에 대해 논한단 말입니까”라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세 번이나 발탁한 정조에 대한 충심도 깊었다. 박제가는 정조가 죽은 뒤 시 ‘정종대왕 만사(正宗大王 挽詞)’에서 “하물며 이러한 임금의 은혜/천 년이 지나도록 다시 없으리”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 조선 지성사의 전환기를 확인하다
정 교수는 “이번 번역으로 북학파로 대변되는 연암 그룹의 내부 동향을 섬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제가는 북학파의 핵심 인물로 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홍대용 등 여러 학자들과 편지와 시를 주고받으며 교유했다.

“당시 형암 이덕무의 집이 (박지원의 집과) 북쪽으로 마주 보고 있었고, 낙서 이서구의 사랑은 그 서편에 솟아 있었다…북소리가 삼경을 알리기에 마침내 여러 벗의 집을 거쳐 백탑을 한 바퀴 돌아 나왔다.”

박제가가 지은 ‘백탑청연집(白塔淸緣集)’의 서문이다. ‘백탑청연집’은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등의 학자들이 서로 주고받은 시를 엮은 책으로 ‘백탑’은 박지원이 살던 곳을 가리킨다. 이 책의 실물은 전하지 않지만 ‘정유각집’에는 박제가가 지은 서문이 실려 이들의 친분을 짐작할 수 있다.

박제가는 1778년 첫 방문 이후 연경을 네 번 여행했다. 첫 방문은 시기적으로 연암 박지원보다 앞선다. 정 교수는 “박제가는 조선시대 지성사의 전환기에 서 있는 인물로 그의 경험이 박지원의 ‘열하일기’, 추사 김정희의 연경 체험으로 이어졌다”며 “그동안 ‘북학의’의 저자로만 평가받았던 박제가의 삶과 사상의 궤적을 이번 번역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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