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468명 집단입국, 그 후 5년]<4>북에 남은 가족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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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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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돈도 번 돈도 다 北으로 … 두고 온 가족은 힘이자 짐”

20만원에 길어야 10분 통화, 단속심해 그마저도 어렵지만
“목소리라도 들을수 있으니…”

1년 평균 206만원 北송금, 돈 보내느라 저축 꿈도 못꿔
탈북시키려 지원금날리기도

그리운 어머니, 사진으로나마…“이분이 우리 엄마고, 이 사람은 우리 큰 언니예요. 저하고 많이 닮았지요?” 탈북자 김남숙 씨가 이달 2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 영구임대주택에서 차례상을 차리다 말고 가족사진을 꺼내들었다. 사진 속 인물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가족을 소개하던 김 씨는 한동안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안철민 기자
그리운 어머니, 사진으로나마…
“이분이 우리 엄마고, 이 사람은 우리 큰 언니예요. 저하고 많이 닮았지요?” 탈북자 김남숙 씨가 이달 2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 영구임대주택에서 차례상을 차리다 말고 가족사진을 꺼내들었다. 사진 속 인물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가족을 소개하던 김 씨는 한동안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안철민 기자
“짐승보다 못한 애비지요. 내가 가족들 다 잡아먹었소.” 강태우 씨(51·이하 가명)는 10년 전 겨울 홀로 두만강을 건넜다. 한국으로 가서 돈을 벌어 가족들을 불러낼 계획이었다. 북한에 있을 때 탄광에서 무너진 탄더미에 깔려 허리를 크게 다쳐 심각한 장애가 생겼지만 한국에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용접기를 잡았다. 정착지원금에다 용접 일로 번 돈을 보태 가족들을 데려올 돈을 마련했다.

“3년 전 아내와 세 아이를 데려오려 1600만 원을 브로커에게 줬는데 국경을 넘는다는 전화가 오고 나서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소식이 깜깜했지요.”

브로커는 기다리라는 말뿐이었다. 다른 사람을 통해 알아보니 가족들이 북한 국경을 넘다 보위대에 붙잡혀 영창에 갇혀 있다고 했다. 지금은 죽었는지 소식도 닿지 않는다.

“영창에 갇히느니 풀뿌리라도 캐먹고 목숨을 부지하는 게 나을 뻔했소. 남은 인생 떨어져 지내더라도 이따금 돈이나 부쳐주는 걸로 만족하고 살았으면 좋았을 걸….” 강 씨는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마다, 따뜻한 아랫목에 누울 때마다 가족이 그립다. 돈이 얼마나 더 들더라도 가족들을 꼭 데려와 함께 살고 싶은 마음뿐이다.

○ 저축 못해도 北 가족에게 송금

많은 탈북자들은 최우선적으로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돈을 쓴다. 취재팀이 접촉한 200명 가운데 가족을 데려오거나 생활비를 보태주려고 북한에 돈을 보냈다고 답한 사람은 41명(20.5%)이었다. 응답을 꺼린 경우가 많아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평화연구원 전우택 부원장은 “자신의 탈북 때문에 고생하는 북한의 가족에게 보상하려는 마음에 무리해서라도 돈을 보낸다”고 말했다.

북한에 보내는 돈의 액수를 밝힌 17명은 1년에 평균 206만 원을 부치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1만7000여 명의 탈북자 중 5000명이 200만 원을 보낸다고 가정하면 1년에 100억 원이 북한에 흘러들어 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해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무상 지원한 197억 원의 절반 정도를 탈북자들이 보내고 있는 셈이다.

정착지원금도 자신의 정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쓴 사례가 많았다. 200명 중 27명의 응답자가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 정착지원금의 일부를 브로커 비용으로 썼다고 답했다.

중국에서 베트남을 거쳐 한국에 온 윤성식 씨(39)는 아내와 딸에게는 자신이 치른 고생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바로 올 수 있도록 한 사람당 700만 원씩, 1400만 원을 브로커에게 건넸다.○ 찐빵 속에 휴대전화 숨겨 연락도

탈북자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과 종종 전화도 한다. 북한에서는 중국의 이동통신망을 이용해 휴대전화 통화가 가능하다. 휴대전화만 무사히 숨겨 북한에 들여가면 중국 국경에서 5km 이내 지역에서는 국제전화로 통화할 수 있다. 국경에서는 이불이나 베개 속까지 뒤져 휴대전화의 반입을 막기 때문에 찐빵 속에 전화기를 숨겨 들여가기도 한다. 1년에 두 번씩 가족들과 통화를 한다는 지규정 씨(29)는 “전화 한 통 하는 데 20만 원 정도 드는데, 최근에는 감시가 심해 비용이 올랐다”고 말했다. 통화 시간은 길어야 10분이다. 몸 성히 잘 지내는지 가족들의 안부를 간단히 묻고, 보낸 돈은 받았는지,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묻고 나면 끝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감시가 심해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한다. 탈북자 가족은 특별감시 대상이다. 김순영 씨(40·여)는 1998년 탈북한 뒤 7년 만에 그리던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됐다. “무사히 살아계셨구나….” 할 말이 너무나 많았지만 어머니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김 씨의 어머니는 누가 엿들을까 봐 두꺼운 이불을 덮고 모기만 한 목소리로 딸에게 안부를 물었다. 수화기 너머로 ‘빨리하고 그만 끊으라’는 브로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배터리 충전이 안 돼 통화를 못하는 사례도 있다. “보내준 돈으로 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 약이라도 지어 드셨는지 묻고 싶은데 전기가 없어 통화가 안 된다는 거예요. 브로커가 자전거 바퀴를 돌려 전기를 만드는 곳까지 걸어가 배터리 충전을 한 뒤에야 겨우 어머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요.”

○ 북에 남은 가족, 꿈이자 짐

지난 추석 김남숙 씨(41·여)의 집에도 나물 볶는 냄새, 전 부치는 냄새가 고소하게 퍼졌다. 올해 차례상에는 큰오빠 위패도 모셨다. 김 씨는 지난해 큰오빠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귀여워하던 나를 못 보고 간 게 아쉬웠는지 큰오빠가 자꾸 꿈에 나타나요.” 김 씨에게는 2002년 설이 북한에서 보낸 마지막 명절이었다. 집 구석구석에는 가족들 사진이 걸려 있다. “무서워서 사진 한 장 못 들고 나왔는데 뒤늦게 나온 조카들이 챙겨 왔어요.” 김 씨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모두 북한에 남았다. 뒤따라 나온 언니는 보위대에 붙잡혀 관리소로 끌려갔다. 식당에서 일해 번 돈으로 두 아이를 키우려면 빠듯한 살림이지만 북한의 가족들에게 1년에 두 번씩 꼭 돈을 보낸다. 한 번에 100만 원도 보내고 150만 원도 보낸다. 북에서는 부모님이 1년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돈이다.

김 씨의 바쁜 손놀림에 소박한 차례상이 차려졌다. 흰 쌀밥에 고깃국을 앞에 두고 김 씨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기름진 쌀밥 앞에 놓고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서로 떠먹여주면 더는 소원이 없을 겁니다.”
■ 北에 돈 어떻게 보내나
中브로커 통해 ‘환치기’… 수수료 20∼30%

탈북자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어떻게 돈을 보낼까. 탈북자들은 알음알음으로 브로커를 소개받는다. 수수료는 보내는 돈의 20∼30% 정도. 한국이나 중국에 있는 브로커는 한국에 은행 계좌를 갖고 있다.

한국에 온 뒤 5년 동안 꾸준히 부모님에게 돈을 보내고 있는 이남호 씨(44·이하 가명)는 “중국 브로커는 한국에 있는 조선족 등을 통해 한국의 은행 통장을 구한다”며 “인터넷으로 계좌이체를 하면 몇 분 만에 확인이 된다”고 전했다.

중국 브로커는 북한 브로커를 통해 돈을 전달한다. 이들은 국경경비대를 매수해 법망을 피하기도 한다. 중국인 상인 편에 돈을 보내는 방법도 있다. 이 씨는 “연변에서는 한 달에 100위안 정도를 통관사무소에 내면 매일 북한을 오가며 장사를 할 수 있는 허가가 나온다”며 “이 장사꾼들을 통해 돈을 보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안진호 씨(33)는 북한에 있는 부모님을 모셔오려 브로커에게 1000만 원을 줬지만 돈을 날린 데다, 브로커를 기다리던 부모님이 공안에 붙잡혀 소식마저 끊겼다. 북한에 남은 딸이 폐결핵으로 위중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600만 원을 보냈다가 그대로 떼인 경우도 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정착금 더 타내려 혼인신고 안하고
복지혜택 받으려 정규직 취업 꺼려
■ 일부 탈북자 편법-탈법 실태

탈북자 김경순 씨(43·여)와 아들(19)은 함께 살고 있지만 주소지는 서로 다르다. 법적으로도 가족이 아니다. 주소지를 따로 해 놓고 법적으로도 남남으로 해 놓은 것은 정부의 정착지원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다.

현재 탈북자에게 지급되는 정착금은 1인 가구는 600만 원, 2인 가구 1100만 원, 3인 가구와 4인 가구는 각각 1600만 원과 1900만 원이다. 임대주택 보증금으로 지급되는 주거지원금은 △1인 가구 1300만 원 △2인 가구 1700만 원 △3, 4인 가구 1700만 원이다.

현 제도에선 가족 수가 많은 것보다는 각자 독립 가구주가 되면 더 많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부부가 2인 가구로 신고하면 정착금(1100만 원)과 주거지원금(1700만 원)을 합쳐 2800만 원을 받지만, 각자 1인 가구로 인정받으면 1인당 1900만 원(정착금 600만 원+주거지원금 1300만 원)씩 총 38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입국 전 브로커에게 이런 얘기를 들은 탈북자들은 한국에 다른 가족이 있는 사실을 숨기기도 한다. 중국에서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던 탈북자들이 한국에 와서 동거를 하면서도 혼인신고를 미루는 이유도 정착금 때문이다.

일부 탈북자는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이나 의료보호 수급권 유지를 위해 정규직 대신 소득 파악이 힘든 비정규직을 전전하거나 자발적 실업자로 남기도 한다. 탈북자 286명을 대상으로 한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의 57.6%가 ‘의료보호나 기초생계급여 지원을 포기하면서까지 취업을 해야 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특별취재팀>
팀장=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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