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3차 남북정상회담의 조건

  • 입력 2009년 8월 28일 20시 57분


남북관계를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3차 남북정상회담을 거론한다. 낙관론은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 조문단을 접견해 남북 정상의 ‘구두 메시지 교환’이 이뤄지면서 힘을 얻었다. 이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메시지 교환을 통해 서로 상대방을 인정했으니 가능성이 열렸다고 볼 수는 있다. 어제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성사된 이산가족 상봉 합의도 대화 진전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핵무장 못 막은 1, 2차 회담

그러나 남북관계를 얼어붙게 만든 북한의 도발이 불과 몇 달 전 일이어서 북의 유화 제스처가 혼란스럽다.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4월 5일)와 2차 핵실험(5월 25일)으로 한껏 위기를 고조시킨 뒤 느닷없이 대화 모드로 나섰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아니라면 북한의 충격적인 도발을 벌써 잊을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성급하게 남북정상회담에 기대를 걸다가는 북한의 치고 빠지기 전략에 말려들 수도 있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정부와 국민이 인식을 공유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안보 불감증이 확산되는 것을 예방하고 북한의 위장 평화공세를 차단하려면 정상회담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은 처음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남과 북의 지도자도 만나서 대화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다. 북의 낮은 단계 연방제에 합의해 준 오점을 남기지 않고, 정상회담에 취해 핵개발로 뒤통수를 치려는 전략을 결과적으로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나름대로 성공한 회담으로 기록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은 다수 국민의 뜻을 거스른 만남이었다. 임기 종료를 4개월 앞둔 지도자가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를 외면한 채 북의 장단에 맞춰 춤을 췄다. 북한의 2차례 핵실험은 2차례 남북정상회담의 실패를 입증하고도 남는다.

3차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려면 최소한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이 서울로 내려오는 형식이라야 한다. 김 위원장의 답방 약속은 북한이 끈질기게 매달리는 6·15공동선언에 시퍼렇게 살아있다. 북은 1, 2차 회담을 남측 지도자가 북측 지도자를 알현하러 간 행사로 포장했다. 수십만 인파가 동원돼 남쪽 지도자를 제 발로 찾아오게 한 김 위원장의 위업을 찬양했다. 또다시 이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선전을 위한 들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김 위원장은 서울에 오면 환영 인파 대신 반대 시위대가 몰려나올 것을 두려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핵을 포기하고 진정으로 남북 화해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우리 국민도 그를 포용할 것이다.

북 검증 소홀히 하면 또 속아

남북정상회담이 의미 있는 만남이 되려면 핵 문제를 포함한 주요 현안이 의제가 되어야 한다. 실천 가능한 구체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전략도 필요하다. 회담은 공개접촉을 통해 당당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비밀리에 준비해 국민을 놀라게 하는 깜짝쇼는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낳게 된다. 지도자는 정상회담 준비단계에서 진정한 협상의 여지가 있는지를 꼼꼼히 따지되 회담이 잘 안되면 손 털고 일어서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데이비드 레이놀즈 교수는 강조한다. ‘세계를 바꾼 6번의 정상회담’의 저자인 그의 충고는 남북정상회담에도 유용하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신뢰하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는 원칙을 고수하며 구소련과 맞서 냉전의 승리자가 됐다. 신뢰할 수 없는 북한을 검증도 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끌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북한은 3대 세습 과정에 들어갔다. 우리 대통령이 핵 문제 해결 없이 정상회담을 위해 다시 평양에 간다면 세계가 비웃는 세습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런 정상회담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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