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박영서]외계생명체 찾는 ‘그리드’

  • 입력 2009년 8월 13일 02시 59분


어린 시절, 밤하늘에 총총히 떠 있는 별을 보며 “과연 저곳에도 우리와 같은 존재가 살고 있을까? 만약 외계생명체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상상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런 상상은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고 스타워즈 시리즈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와 소설을 만들어 냈다. 과학자의 관점은 약간 다르다. 물론 비슷한 상상에서 모티브를 얻지만 세계의 수많은 과학자는 픽션이 아닌 논픽션으로 증명해보고자 노력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우주의 행성 가운데는 지구와 비슷한 조건을 가진 행성이 틀림없이 있고, 언젠가는 틀림없이 그 생명체의 존재를 알게 된다는 것이 과학자의 논리다.

이런 논리를 가장 대규모로 실행에 옮긴 프로젝트가 1999년 시작한 ‘SETI@home’이다. 세계적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쓴 소설 ‘콘택트(Contact)’와 동명의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한 점으로도 유명하다. 이 프로젝트에는 매우 특별한 점이 하나 있다. 미국 우주과학연구소가 지상 최대의 우주망원경인 아레시보 망원경을 통해 외계의 전파를 받으면, 하나의 슈퍼컴퓨터로 분석하지 않고 전 세계 900만 명에 가까운 회원의 PC 자원을 조금씩 모으고 모아 분석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차세대 네트워크라고 불리는 그리드(Grid), 그 가운데서도 초고속네트워크와 범용 미들웨어를 이용해 개개인이 쓰고 남는 PC 자원을 모으는 데스크톱 그리드 기술 덕분에 가능하다. 보통 사람이 문서작성이나 인터넷에 사용하는 자원은 PC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하므로 유휴 용량을 모으면 엄청난 규모의 컴퓨팅 자원을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초고속인터넷 가입자의 5%만 데스크톱 그리드에 참여해도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슈퍼컴퓨팅 자원을 만들 수 있다. 수백억 원에 이르는 슈퍼컴퓨터를 공짜로 얻는 셈이니 그야말로 봉이 김선달 같은 기술이다.

최근 국내 자체 기술로 SETI@home과 동일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유엔이 정한 ‘천문의 해’를 맞아 추진하는 이 사업은 ‘SETI Korea(한국형 외계 지적생명체 탐색)’로 한국천문연구원이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을 통해 관측한 데이터를, 국내 유일의 국가 그리드 구축사업을 추진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첨단 데스크톱 그리드 기술로 분석해 외계 지적생명체의 흔적을 찾으려 한다. SETI Korea의 최종 목표는 외계 지적생명체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러나 목표에 다다르는 과정에서 얻는 부수적인 이득이 매우 크다.

데스크톱 그리드는 얼마나 많은 회원이 참여를 하는지가 최대 관건이다. 아무리 제반 기술이 뛰어나도 유휴 PC 자원을 제공하는 누리꾼이 적으면 대용량 컴퓨팅 자원을 만들 수 없다. SETI Korea는 외계 지적생명체 탐색이라는 흥미로운 주제 덕분에 미지의 영역이었던 데스크톱 그리드를 일반인에게 매우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SETI Korea 이외에 신약 나노로봇 우주발사체 등 첨단과학기술의 연구개발을 위한 데스크톱 그리드 프로젝트에도 누리꾼이 PC 자원을 제공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엄청난 기폭제가 된다.

SETI Korea는 공상과학(SF)적 상상력에 기댄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다. 데스크톱 그리드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제고하고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 누가 아는가. 영화 ‘콘택트’의 앨리 애로위(조디 포스터 분)처럼 언젠가 SETI Korea를 통해 외계생명체와 접촉하는 기회를 잡을지 말이다.

박영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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