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경미]동물원의 교사, 정글 속의 강사

  • 입력 2009년 7월 23일 03시 16분


가르치는 사람에게 학교는 ‘동물원’이고 학원은 ‘정글’이라고 한다. 교사에게 학교는 적당한 환경이 조성된 동물원처럼 적극적인 노력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이다. 학원 강사는 생존을 위해 매순간 긴장해야 하는 정글에 던져져 있다. 수업은 원장이나 동료강사에 의해 수시로 평가받고 수강인원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수업이 부실해지면 입소문을 통해 일파만파 전해지므로 학원 강사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수업에 임할 수밖에 없다.

공교육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학교가 학원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진다. 공교육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다. 수학의 경우 본질적인 개념과 원리에 대한 설명부터 해야 하는 학교 수업과 달리 학원 수업에서는 유형별로 문제를 공략하는 간편 레시피를 알려주고 집중적으로 연습시키면 된다. 학교에서는 과학 실험을 충분히 하지 못하지만 학원 과학 수업에서 실험과 탐구는 배제된 항목이다.

사교육 강사는 자연계열 선택과목이나 수리 논술과 같이 전문 분야로 특화시킬 수 있지만 공교육 교사는 다양한 과목뿐 아니라 학생 생활지도, 진로지도, 행정업무 등 만능플레이어가 돼야 한다. 학생은 학교 수업에서 재미를 찾고 학원 수업을 통해 점수를 올린다고 한다. 수업의 질을 평가할 때는 짧은 시간에 점수를 효과적으로 올려주는 면을 고려하므로 공교육과 사교육의 질을 단순 비교하기는 적절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교원 임용시험에 합격해 공립학교 교사가 되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사범대학의 고시라고 불리는 임용시험은 경쟁률 자체만 보면 사법시험보다 통과하기 어렵다. 우수한 재원이 사범대학에 입학해 대학시절 내내 수험생으로 살다가 그것도 모자라 졸업 후 학원을 다니며 절치부심 준비하여 임용시험의 관문을 통과하므로 공립학교 교사의 출발점 수준은 사교육 강사보다 훨씬 높다. 그렇지만 일단 발령과 함께 신규 교사 연수를 받은 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은 2급에서 1급 정교사가 되기 위한 단 한 번의 자격연수뿐이다. 교사의 역량을 강화할 제도적 장치가 미흡한 셈이다.

최근 사교육을 억제하려는 일련의 강경 조치가 이어지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공교육의 체질을 강화해 자연스럽게 학생들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신규 교사 채용을 확대하여 교사당 학생 수를 줄이고, 행정 업무 경감을 위해 보조 인력을 배치하는 등의 조치가 우선적이다. 교사가 되기는 어려워도 일단 되고 나면 정년까지 무사통과하는 현행 시스템을 바꿔 정기적인 수업 공개와 수업능력평가가 이뤄져야 하며 이에 상응하는 인센티브 지급 등 교원 사기진작을 위한 방안도 병행해야 한다.

몇 년 전 일본 쓰쿠바대 부속학교에서, NHK에 여러 번 보도된 유명 교사의 수업을 참관한 적이 있다. 그 교사는 매번 공연을 앞둔 사람처럼 수업을 준비한다고 한다. 매 순간의 계획이 치밀하게 짜인 공연처럼 교과 내용적인 측면뿐 아니라 교실에서 어떤 동선으로 움직일지, 수업 중간에 어떤 내용을 칠판에 남기고 지울지까지 미리 머릿속에 그린다고 한다. 우리에게 사교육의 스타 강사는 있어도 공교육의 스타 교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교사의 전문성 신장과 사기 진작을 위한 일련의 조치는 진정한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훌륭한 교실 공연, 스타교사의 출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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