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당신들의 ‘선동 정치’

  • 입력 2009년 6월 7일 20시 43분


내게 영어회화를 가르치는 캐롤라인은 한국인 사위와 며느리를 둔 미국인 엄마다. 남편과 아들딸이 주한미군으로 복무한 적이 있어 나보다 한국을 더 걱정한다. 그가 지난해 촛불시위에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후폭풍을 보며 “한국인은 참 속기 쉬운 민족”이라고 했다. 다정도 병일 만큼 금방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국인은 속기 쉬운 민족인가

작년 이맘때 서울 한복판을 불태웠던 촛불시위는 ‘미국 소는 광우병 소’라는 MBC발(發) 괴담이 촉발했다. 2002년 안타깝게 사고사(事故死)한 효순이 미선이는 ‘미군이 죽인 촛불소녀’인 양 부활해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미쳤다. 처음엔 속아서, 나중엔 나라 걱정으로 뛰쳐나온 민심에 특정세력과 이념이 휘발유를 부은 건 물론이다. 이젠 노 전 대통령의 불행한 죽음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뜻한다며 횃불로 몰고 갈 태세다.

이런 주장에 또 속기 쉬운 사람들이 지금 알아야 할 세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정부가 시장개입을 확대하는 추세는 선진국 얘기라는 점이다. 미국 피터슨 국제경제학연구소는 4월 “선진국들과 달리 신흥시장에선 자본주의와 시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다. 오히려 탈규제 시장개혁을 가속화하고 법치와 교육, 사회적 안전망 같은 기본적 정부역할을 다지는 현실이다.

둘째, 미국과 영국보다 타격을 받은 쪽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유럽경제다. 독일에선 “사회적 시장경제는 끝났다”는 소리까지 나온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사회주의적 경제운용은 성공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위기 초반 쿠션역할을 하던 규제와 복지가 거꾸로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아서다.

셋째, 민주주의가 위기라는 주장은 우리나라에서만 터지는 게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이 문제라지만 내각제 영국에서도 부패와 무능 때문에 난리다. 20년 전 베를린 장벽 붕괴로 확산된 민주주의 세계는 요즘 경제위기를 키운 정치에 대한 분노로 부글거린다. 반면 같은 해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민주화 요구를 짓밟았던 중국에선 당장 선거해도 공산당이 이길 만큼 만족도가 높다. 민주주의가 위기인지, 민주주의 때문에 위기인지 헷갈릴 판이다.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뇌물수사만 없었다면 함께 대정부 비판에 나설 계획이었다고 DJ 측 인사들이 말하고 있다. 작년 쇠고기 시위를 ‘직접민주주의’라고 했던 DJ는 구 여권인사들에게 “80이 넘은 나도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남북문제 퇴행을 지적하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며 행동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종 단체가 모인 범국민대회, 6·15 남북공동성명 9주년 행사가 대대적으로 준비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성싶다.

무엇을 위해 ‘행동’을 독려하나

전형적인 선동정치이지만 놀랄 것도 없다. 자신을 민중의 상징으로 믿는 선동가는 민주주의 내에서도 시시때때로 등장한다는 ‘선동가’란 책이 미국에서 새로 나왔을 정도다. 민주국가를 위협하는 최악의 적이 선동가이되,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은 민주헌법으로 무장한 국민의식에서 나온다고 했다. 문제는 우리 손으로 만든 헌법보다 선동가들에게 더 의지하려는 우리한테 있다고 해야 한다.

지금 세계의 현실을 똑바로 본다면 국정기조 전환을 요구하는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알 수 있다. 시장개혁을 하지 말라고? 유럽식 경제를 따르라고? 대통령제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전임 대통령의 자살이 비통한 일이라 해도 이로써 또 한번 재미 보자는 건 무책임한 선동정치의 극치다. 나라와 국민을 볼모로 국정을 마비시켜 정권을 탈환한들, 뒤로 가는 남한과 핵무장한 세습왕조 북한 말고 무엇을 그들에게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오늘의 혼란을 이해하려면 과거 민주화운동의 중추였던 지금의 야당과 단체들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1987년 자유민주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산업화세력과 손잡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건설했으나 민족주의 공산주의 통일지상주의 및 주체사상을 추구하는 이들은 여기 만족하지 못해 운동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아직도 민주화를 부르짖는 세력의 목적은 혁명(참여민주주의로 표현된다), 김정일과의 통일이라는 지적이다.

대통령만 내 손으로 뽑을 수 있다면 민주주의가 완성된다고 믿었던 시절이 차라리 행복했을까. 20여 년 전 민주화를 이끈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굳히기란 생선찌개를 어항으로 만들기보다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생선찌개를 뒤엎진 않는다. 이 정부가 다 잘한다고 말할 순 없어도 국정기조는 틀리지 않았다. 소통과 정치력으로 국민의 마음을 잡지 못한 게 죄라면 죄지만 민중봉기를 독려하는 선동정치보다는 백번 낫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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