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9년 5월 27일 02시 49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 곧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 했다. 이제는 라디오 정치의 폐해와 부작용 역시 한 번쯤 따져볼 때가 되었다. 우선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이 정치판의 인기 무대로 급부상하는 현실부터 문제다. 서로 싫든 좋든, 밉든 곱든 정치인들은 본래 주어진 ‘근무지’를 중심으로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이 원칙이고 기본이다. 헌법기구인 정당이나 국회는 본질적으로 회의체 조직 아닌가. 회의 잘하라고 월급 주고 자리 주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지금 현재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의 최고 단골손님은 다름 아닌 정치인들이다. 얼마 전 자료에 따르면 한 달 동안 아침 프로에만 120여 명의 국회의원이 출연했다.
의원들 ‘변명-비난의 도구’로 악용
물론 정치인이 국민과 가까이 하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막상 그들의 고유 활동공간인 국회에서 욕설과 폭력이 상습적으로 난무하고 최근에는 해머에 전기톱까지 등장한 마당에 국민을 직접 상대한답시고 라디오 정치에 열중하는 행태는 본말전도(本末顚倒)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해당 방송사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라며 국민이 깔아준 멍석을 곧잘 차버리는 정치인들에게 청취자를 대상으로 자기변명과 상대 비난에 나설 기회를 열심히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정치인의 방송 인터뷰 내용 가운데는 그들만의 파워게임이나 권력 갈등에 관한 것이 크게 두드러진다. 국리민복(國利民福)과 직접적 상관이 없는 정치권 내부의 집단 간 대립이나 개인적 경쟁이 세간의 시시콜콜한 재밋거리로 설왕설래(說往說來)하는 일이 잦은 것이다. 계파, 실세, 탈당, 복당, 공천, 대권 등과 같은 실물정치 혹은 정치공학적 용어가 이른 아침부터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자극한다. 이로써 한국정치 특유의 후진적 ‘가십(gossip) 담론’은 오히려 증폭되는 기세다.
이와 더불어 라디오 정치는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사회의 주요 현안과 이슈를 선정성과 즉흥성의 프레임에 가두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서로 다른 견해 사이에 접점을 발견하고 화해를 모색하기보다는 차이를 강조하고 갈등을 부각하는 것이 당장에는 훨씬 더 화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일종의 즐거운 ‘싸움구경’인 셈이다. 또한 분초(分秒)를 다투는 생방송의 특성 탓에 장기적 안목과 진지한 성찰을 통한 사회적 의제나 담론 설정도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여기에 방송사들끼리의 하루하루 치열한 경쟁이 가세하면서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막중한 공적 책임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생생한 사회 공론장으로 거듭나야
언필칭 민주주의 시대의 도래에 걸맞게 말이 풍성해진 것 자체는 라디오 정치의 보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말잔치나 말솜씨가 곧 민주주의는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말의 진실성과 진정성, 그리고 정책으로 귀결되는 구체적인 행동과 실천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과묵의 미덕이나 눌변의 미학이 원천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 라디오 생방송의 특징은 국민 사이에 널리 이해되고 충분히 감안되어야 한다. 채널만 돌리면 같은 출연자를 하루아침에도 몇 번씩 만날 수 있는 현행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존재양식은 말하자면 정치행위이자 전파 낭비일 뿐이다. 또한 방송 진행자들도 프로그램 간판마다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거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인간과 역사, 그리고 세계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정중한 예의가 아직은 많이 부족해 보인다. 기왕의 인기와 영향력을 바탕으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이 명실상부한 사회적 공론장으로 거듭나려면 지금부터 노력해야 한다.
전상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sangin@snu.ac.kr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