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88>

  • 입력 2009년 5월 7일 13시 41분


Seoul, Asia Central!

도시라는 정글에 사는 인간은 그 지형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영악한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스스로 정글을 디자인 한다는 것. 도시를 디자인하는 것은 인간의 삶을 디자인하는 것과 같다.

2040년, 세계가 특별시 체제로 재편된 후부터 각 도시는 자기만의 특징을 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뉴욕은 '은하계와 포옹하는 도시'를 자처했고, 시드니는 '다시, 원시림으로!'를 새로운 표어로 삼았다. 북경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천하제일도시'로 나갔고, 테헤란은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대대적인 '이야기 박물관' 건립에 착수했다. 『특별시연합공용어사전』에 가장 많이 실리는 신조어가 바로 도시 관련 단어와 숙어들이다.

2049년 서울은 여전히 화려하다. 패션, 건축, 공연, 아찔한 야경과 LED 간판 그리고 홀로그램까지 첨단을 달리지 않는 것이 없다. 아시아 대륙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죽는 이들은 꼭 한 번 서울특별시 관광을 꿈꾼다.

처음부터 서울이 아시아의 심장으로 부각된 것은 아니다. 무분별한 고층빌딩과 거미줄처럼 뒤엉켜 시도 때도 없이 막히는 도로 그리고 가슴을 짓누르는 매연 때문에 지탄받던 시절도 짧지 않았다.

2028년부터 시작된 '서울의 물결' 운동은 병들어가는 20세기 공룡 도시 서울을 참신하고 자연친화적인 21세기형 도시로 탈바꿈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특별시내의 천연자동차 비율이 급속도로 높아졌고, 고층건물 신축을 허가받을 때도 미학자와 건축디자이너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 집단의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지하로 숨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물론 지금도 빈민가의 삶은 하루하루 힘겹고 암울하다. 서울 중심의 문화 집중과 경제 집중 현상 또한 100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다.

이 모든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2049년 서울의 위용은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하다. 교통 체증이 심각해지면서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이 대부분 이중으로 바뀐 것, 공중 주차장이 곳곳에 들어선 것, 남산 타워가 사라지고 '벌룬 우주선'이 공중에 떠서 그 역할을 대신한 것, 고층건물의 스카이라인이 예쁘게 다듬어지고 야경이 멋들어지게 바뀐 것 등이 최근의 변모된 풍경이랄까.

강북의 일부가 소도시로 떨어져 나가고 인천 송도와 연결된 사당과 인근 지역이 크게 확대되면서, 특별시내 지역별 역학구도가 많이 달라졌다. 금융 일번지가 여의도에서 강남 삼성동으로 옮겨갔고, 구로와 상암 지역이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급부상했다.

강남이 패션과 문화의 거리로 한창 주가를 날리던 2028년 가을, 전면 재개발을 시작한 강북은 고풍스런 구도시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친환경적 도시로 자리를 잡았다. 동경 하라주꾸를 연상시키는 '나무가 울창한 거리'가 곳곳에 생기고, 동물원 대신 생태 공원이 들어섰으며, 산자락을 따라 고풍스런 건축물이 여기저기 둥지를 틀었다.

강남 압구정동과 청담동의 화려함과 세련됨은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면서, 명품숍과 비즈니스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건물 하나하나가 패션이요 문화요 과학이요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아시아의 젊음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출렁였다. '서울을 물결'을 배워가려는 장사꾼들이 하루에도 수천 명씩 강남 곳곳에 모였다가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 손 집는 곳 눈 두는 곳 발 딛는 곳 모두 미래의 잔물결이 쓸고 간 자리다. 서울은 이제 비대해진 몸을 가누지 못하는 공룡이 아니라 쓰임쓰임에 따라 수천수만으로 떨어져 뒹구는 디지털 물방울이다.

압구정동과 청담동의 밤은 더욱 매혹적이다. 밤 10시만 되면 거대한 공룡 홀로그램이 갤러리아 백화점 생활관 벽돌을 명품관으로 옮겨 나르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그 옆 루이비통 건물 전면에 투영된 '레고블록으로 신상품을 조립하는 영상'은 만물이 창조되는 순간을 직접 목격하는 듯한 감동을 안긴다.

2049년 서울이라는 정글은 테크노 카멜레온의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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