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하창우]해외 취업사기 엄중히 제재를

  • 입력 2009년 5월 2일 02시 57분


한국으로의 취업 수요가 늘면서 해외 불법 브로커가 중국과 몽골에서 현지 주민에게 큰 피해를 줘 국제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3월 하순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 하이린(海林) 시 중국인들이 2006년부터 2년 이상 한국에 취업시켜 준다는 한국인 브로커에게 속아 1042만 위안(약 20억 원)을 사기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에는 한국인 브로커가 회사 파산 후 해산신고를 하지 않은 국내 법인의 인감증명서와 사업자등록증을 구입한 뒤 2007년 8월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에 취업자를 모집하는 ‘아시안 국교펀드’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몽골 일간지에 한국 취직을 보장한다는 광고를 내고 몽골인 681명을 상대로 140만 달러(약 20억 원)의 사기를 벌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사건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외국인을 상대로 한국인이 저지른 범죄로 피해자 대부분이 가난한 농민이나 서민이라는 점에서 국제적으로 크게 비난받고 있다. 몽골의 경우 피해자 한 사람이 브로커에게 지급한 비용 2000달러는 몽골 노동자 평균 임금의 2년 반 치 액수일 정도로 막대하다. 피해자 중에는 한국에 취업하여 큰돈을 벌겠다는 기대로 살고 있는 집을 팔거나 학교에 다니는 자녀의 학업을 중단시켰다가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가산을 탕진하고 이혼당하거나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정신분열증을 앓는 이도 있다고 한다.

파렴치한 국제 취업 사기 범죄의 여파는 현지 교민에게도 미친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돌을 던지거나 이유 없는 시비를 거는 등 교민 피해가 날로 커진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으로 현지 피해자들이 시위를 벌이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됨으로써 반한(反韓) 감정이 극도로 고조돼 방치하고 있을 수만 없는 상황이다. 해외에서 불법 브로커가 활개를 쳐 국가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하지만 정부는 지금껏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우리가 세계 13위의 경제강국이라고 자부하면서 한국인이 외국에서 저지르는 이런 후진적 범죄를 방관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외국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한 사기 사건은 사기범이 국내로 잠입할 경우 외국 정부가 관여하기 힘들고, 피해자가 외국에 있어 국내 수사기관이 선뜻 나서기 어려울 뿐 아니라 즉각적인 피해 회복이 어려우므로 사건 해결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현재 33위 수준인 대한민국의 국가브랜드 순위를 2013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5위로 도약시키겠다는 정부라면 국가명예와 관련된 문제인 만큼 오히려 국내 사기 사건보다 더 엄하게 처리해야 한다.

우선 정부는 중국과 몽골 정부의 협조를 얻어 피해자와 피해 규모를 파악한 뒤 재산상의 피해를 회복해 주는 최선의 방안이 무엇인지 강구할 필요가 있다. 또 원인을 규명하여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반한 감정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한국 제품이 해외에서 잘 팔리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수사기관은 사기범을 끝까지 추적해서 형사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법부 또한 이런 국제 취업 사기범은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 최근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살인 뇌물 등 8개 범죄에 대한 양형(量刑)기준안을 확정해 7월부터 시행하기로 했지만 정작 가장 일반적 범죄인 사기에 대해서는 양형기준안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사법부는 재판 과정에서 국가명예를 훼손하는 사기 범죄를 엄중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세계를 향한 대한민국의 도약과 선진국 진입에는 국가적 이미지를 관리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한국인이 ‘돈만 아는 동물’이라는 비난을 받아서는 곤란하다.

하창우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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