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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5월 1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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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루스벨트가 내놓은 최저임금제, 사회보장법, 노동자의 단체교섭권, 높은 세금 등은 대기업 경영자들의 증오를 샀다. GM의 앨프리드 슬론, 듀폰의 피에르 듀폰처럼 경영사에 길이 남을 쟁쟁한 기업가와 금융가도 그를 낙선시키기 위해 재산을 쏟아 부었다. 루스벨트는 “부유한 적들은 나에 대한 증오심으로 일치단결했다”면서 이를 대중동원에 노골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은 흔히 거론되는 경기부양책보다 금융규제와 사회보장 측면에서 미국 경제에 더 깊은 영향을 미쳤다. 증권법(Securities Act), 증권거래법(Security Exchange Act) 등을 만들어 상장회사들이 자세한 내부 회계를 주주에게 공개토록 했고,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해 ‘뱅커들이 다른 사람의 돈을 이용해 투기하는 것’을 막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금융규제와 투명성 확보가 세계 투자자들의 신뢰를 담보함으로써 그 후 수십 년간 미국 자본시장이 번영하는 기초가 되었다. 또 뉴딜 때 마련한 사회보장제도는 빈부 격차를 줄이고 중산층이 팽창하는 데 일조함으로써 미국 기업이 번창하는 토대가 되었다.
1970, 80년대 일본 등 후발국의 추격과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의 인플레이션)을 거치면서 케인시언들이 물러나고 미국 경제정책이 자유방임주의로 쏠리게 된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다. ‘작은 정부와 감세’로 대변되는 레이거노믹스가 경쟁력과 효율성이 가장 뛰어난 체제로 칭송받으며 최근까지 세계를 풍미해 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시장)’이 알아서 최적의 자원 배분을 해주리라는 믿음, 큰 물결은 모든 배를 띄운다(경제성장이 분배문제도 해결한다)는 가설, 개별 금융회사의 수학적 리스크 관리가 전체 경제 시스템의 위험관리로 연결되리라는 생각 등이 이번 금융위기로 산산조각이 났다. 경제위기가 터지기 전에도 “중산층이 줄고 있다”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해진다” “경영자들의 보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등 미국 사회 내에서 경고음이 울리던 터다.
지난달 29일 취임 100일을 맞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등장 시기나 정책 지향에서 루스벨트와 많이 닮았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60여 년 만에 미국의 정책 방향을 크게 바꿔 놓을 것으로 보인다. 부유한 사람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리고, 금융규제를 강화하며, 의료보험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를 보완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정부 지출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30% 정도로, (자본주의 경제가 아니라) ‘혼합경제’라고 자처하는 미국은 앞으로 정부 규모가 더 커질 것이다. 취임 후 행적을 보면 오바마는 루스벨트보다 덜 투쟁적이고 더 세련되어 보인다.
외환위기 이후 미국 모델을 좇아 숨 가쁘게 달려온 한국도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지역사회나 종업원보다 주주를 최우선하는 주주자본주의, 불황이 닥치면 구조조정부터 하고 보는 미국식 위기극복, 장기투자나 연구개발보다 현란한 금융기법을 동원해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성장방법 등 미국식 기업 경영의 장단점도 곰곰이 뜯어봐야 할 때다.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