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우정열]남이하면 비리,盧가하면 고뇌에찬 결단?

  • 입력 2009년 4월 9일 03시 10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돈을 받았다는 사과문을 올린 7일 언론사 인터넷 뉴스 게시판과 포털사이트 등에는 노 전 대통령을 성토하는 댓글이 끝없이 이어졌다.

2002년 대선 과정에서 ‘희망돼지’ 저금통으로 상징되는 도덕적 우월성을 앞세워 집권했고, 스스로를 ‘검은돈’에서 자유로운 정권임을 공언하며 과거 정권과 선을 그었던 노 전 대통령이었기에 시민들의 반응에는 참담함과 분노가 배어 있었다.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다는 한 시민은 “측근과 친인척이 줄줄이 잡혀 들어가도 ‘노 전 대통령만은…’ 하며 믿었는데 돈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배신감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인사 청탁하면 패가망신시키겠다고 공언했던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판 무덤에서 패가망신 당하게 됐다”며 혀를 찼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에 게시된 노 전 대통령의 사과문 밑에 달린 지지자들의 댓글은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일반 국민의 감정과 동떨어져 있었다.

“재임 기간에 얼마나 깨끗했으면 빚을 갚지 못해 부자 친구에게 신세를 졌겠느냐”, “(정적에 대한) 숙청작업을 못해서 이런 고초를 겪는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 “각하에 대한 지지는 영원할 것” 등의 댓글이 수백 건이나 됐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무조건적 옹호와 찬양이 대부분이다.

2002년 대선 과정이나 노무현 정부 집권기간 내내 과거 정권이나 정적들에게 ‘도덕성’이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던 사람들에게서 나온 반응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마치 딴 나라에 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상대 정파에 높은 수준의 청렴도와 도덕성을 요구했다가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된 노 전 대통령이 마지못해 내놓은 사과를 마치 ‘고뇌에 찬 결단’으로 치켜세우는 글도 있었다. 이는 결국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이중성을 보여준 것이다.

앞으로 진행될 검찰 수사에서 노 전 대통령이 국민의 진짜 여론을 외면한 채 지지자들의 댓글이 만든 환상에 갇혀 친인척과 측근의 과오와 비리를 짊어진 희생자인 양 행동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이 또 한번 국민을 배반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제 국민의 눈은 검찰에 쏠려 있다. 검찰은 국민이 실상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정치적 판단 없이 철저하게 수사해 공개해야 한다.

우 정 열 사회부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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