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허승호]‘고부담 시험’과 교사의 부정행위

  • 입력 2009년 2월 25일 02시 58분


미국의 시카고교육위원회는 1996년부터 매년 공립학교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측정하는 시험을 치르고 있다. 3학년 6학년 8학년(한국의 중2)은 시험을 통과해야 진급할 수 있다. 좋은 성적을 내거나 두드러진 발전을 보인 학교는 상을 받지만 성적이 나쁘면 보호관찰 대상이 된다. 나쁜 결과가 지속되면 폐교 검토 대상이며 교사는 해고될 수 있다. 이처럼 당사자들에게 주는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이를 ‘고부담 시험’이라고 부른다.

큰 부담 때문에 학생뿐 아니라 교사나 학교도 부정을 저지를 ‘인센티브’가 생겼다. 양상은 다양했다. 시험시간을 더 주거나 감독을 느슨하게 하고, 시험 도중에 슬쩍 힌트를 줬다. 칠판에 답을 적어주다가 적발된 교사도 있다.

한 경제학자가 생각했다. ‘경제학은 인센티브를 다루는 학문이며, 또한 사람들이 어떻게 인센티브에 반응하는지를 측정하는 통계적 도구를 가지고 있다. 이를 이용해 부정사례를 찾아보겠다’고…. 그는 시카고교육위에 이런 제안을 했고 1993∼2000년에 작성된 70만 장의 답안지를 건네받았다.

검증 방법은 ‘이상한 답안’을 골라내는 것이었다. 통상 시험에서 쉬운 문제는 앞에, 어려운 문제는 뒤에 배치된다. 만약 쉬운 것은 놓치면서 어려운 것을 맞히는 학생이 많다면 이상하다. 또 여러 학생의 답안지에서 뒤쪽 문항에 똑같은 일련의 답들이, 그것도 오답까지 섞여서 반복되고 있다면 ‘누가 답안지를 고쳤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 성적이 낮던 학생들이 올해 놀랍게 향상됐다가 내년에는 다시 이해하기 힘든 폭으로 떨어진다면 ‘올해 성적’을 의심할 이유가 생긴다.

이런 방식으로 ‘이상한 답안’을 추출해 조사한 결과 응시학급의 5%에서 부정이 확인됐다. 가장 노골적인 부정행위인 ‘교사의 답안지 조작’만을 찾아내는 연산법인데도 이런 숫자가 나온 것. 2002년 시카고교육위는 증거가 명확한 교사 12명을 해고하고 다른 교사들은 경고조치했다. 그 학자는 스티븐 래빗 시카고대 교수로 상세한 적발기법은 저서 ‘괴짜경제학(Freakonomics)’ 및 두 편의 논문에 실려 있다.

소중한 지면을 빌려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시험 부정에 대해 장황하게 언급하는 것은 우리의 학업성취도 평가 논란 때문이다. 전북 임실과 대구에서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 수를 허위 보고했고 충남 논산과 공주에서는 기말고사 등 엉뚱한 성적을 제출했다. 심지어 서울의 몇몇 학교는 운동부 학생에게 시험을 못 보게 했다.

고부담의 부작용이다. 당연히 적발해 조치해야 한다. 제도도 보완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시험을 없애자”고 주장한다면 우습다. 경쟁-평가-보상은 세상사의 기본원리다. 나아가 진단 없이 처방할 수 없듯이 진상을 감추고는 올바른 교육정책을 세울 수 없다. 미국의 경우 시험 폐지 논란이 일기는커녕 연방정부가 나서서 2002년 모든 주에 고부담 시험을 의무화했다. 사실은 대부분의 주가 초중등학교에 고부담 시험을 이미, 스스로 도입한 상태였다. 영국 일본 등에서도 같은 취지의 평가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올해 처음 전수 시행된 기초학력평가에는 보완할 대목이 많다. 현재 교육부는 평가정확성 높이기에 골몰하고 있다. 지식산업이 주도할 미래 경제에서는 최상위층의 수월성이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결정한다. 따라서 기초학력뿐 아니라 고학력 학생의 분포도 세심하게 조사해 보편성 교육뿐 아니라 수월성 교육에는 문제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시험(PISA)’처럼 성적과 부모의 소득-학력-지위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학력 및 계층의 세습 정도도 알아봐야 한다.

첫 시행에서 나타난 부작용을 빌미로 시험제도를 공격하고 무력화하면 안 된다. 큰돈을 들여 치르는 시험인 만큼 국가백년대계를 끌어올리는 데 필요한 정보와 정책적 함의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도록 궁리하고 제도를 다듬어 가야 한다.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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