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연구시장 vs 정책시장

  • 입력 2009년 2월 12일 02시 55분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에서 ―2%로 확 내렸을 때 가장 크게 놀란 사람은 기업인도 서민도 아닌 경제연구자들이었을 것 같다. 경제 상황 악화에 대한 우려 때문이 아니다. 정부의 ‘2009년 플러스 성장(3%)’ 전망에 따라 국책연구소는 물론이고 민간연구소들도 어떻게든 끼워 맞춰 플러스 전망치를 발표해왔는데 정부 전망치가 마이너스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분석과 예측 실력으로 먹고사는 연구집단이 정책운용집단에 뒤통수를 맞아도 아주 세게 맞았다.

▷대표적 국책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월 21일 당시 성장전망치 마지노선인 1%를 깨고 0.7%를 제시하자 “KDI가 모처럼 역할을 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작년 말 전망치를 1%대(1.7%)로 처음 내린 한국금융연구원도 비슷한 격려의 말을 들었다. 그렇지만 두 연구원은 “내부적으로는 마이너스 전망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발표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마사지(massage)’로 발표치를 부풀렸다는 얘기다. 1월 말 물러난 이동걸 전 금융연구원장은 “1%대 발표 후 정부에서 싫은 소리를 하더라”고 주장했다.

▷국내외 상황과 정부 대응이 급변하니 전망 자체가 힘든 게임이 됐다. 하지만 작년 12월 2%를 제시했던 한국은행이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을 올해 1월 말 총재의 강연이라는 옹색한 방법으로 밝힌 건 한은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 정도라면 공식 발표를 했어야 옳다. 국민이 경제 전망을 보기 위해 외국 금융기관의 자료를 더 살펴야 하는 게 말이 되는가. 11일에야 ―2.4%를 발표한 삼성 등 민간연구소들도 정부 눈치를 본 흔적이 뚜렷하다면 연구자들은 부끄러워할까, 알아주니 다행이라고 할까.

▷연구시장의 입을 막아 정책 불만을 줄인들 정부에 좋을 게 없다. 정부에 필요한 문제 제기나 정책 제언도 부실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2, 제3의 미네르바’가 활동공간을 얻게 되고 정부는 또 쩔쩔매면서 해명해야 한다. ‘정부가 정직해지겠다’는 윤 장관의 약속은 ‘연구시장 해방’ 선언이어야 의미가 있다. 정부가 경제 실상을 국민에게 솔직히 밝히는데, 연구소가 연구결과를 자기 책임 아래 있는 그대로 발표하지 못한다면 불공정하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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