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3>기업 경쟁력 강화하려면

  • 입력 2009년 1월 3일 02시 57분


살아남기 글로벌 경쟁 ‘4륜 구동’으로 뛰어넘어라

껍데기만 살아남아선 안돼… 체질개선 최우선

정부 국민도 힘 합쳐 정책지원 - 기업격려해야

“내년 송년회 때 우리 꼭 살아서 만납시다.”

지난해 12월 하순 저녁 경기 수원시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인근의 식당. 삼성전자 임원 몇 명과 협력업체 사장 20여 명이 송년 회식을 마친 뒤 나눈 인사말은 이처럼 비장했다. 일부 협력업체 사장들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고 한다.

2009년 한국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은 없는가.

해답은 단순하다. 살아남아야 한다. 단 껍데기만 살아남아서는 안 된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체질을 바꾸고, 상생협력과 사람경영을 토대로 기업경쟁력을 강화해 질적(質的)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 체질을 바꿔야 살아남는다

‘이카루스 패러독스(ICARUS PARADOX).’

세계적 경영전략 학자인 캐나다의 대니 밀러 교수가 제시한 개념이다. 기업이 성공요인에 안주하다가 그것이 실패요인으로 반전되는 상황을 일컫는 말로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 이야기에서 따왔다(이카루스는 인조 날개로 하늘을 날다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간 나머지 날개에 붙인 밀랍이 녹아버려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기업경쟁력을 가지려면 과거의 성공 경험에 매달리지 말라”고 입을 모은다. 김종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과거에는 1조 원 투자해서 10조 원을 벌 수 있었지만 지금은 10조, 100조 원을 투자해야 글로벌 무대에서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리스크(위험)가 커졌다”며 “어느 때보다 전략적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무엇인지, 그 뿌리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이 2008년 한 해 동안 공·사석에서 수차례 했던 말이다. 남 부회장은 2007년 하반기(7∼12월) 중국 제조업 현장을 시찰한 뒤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규모뿐만 아니라 기술력조차도 한국 기업들을 압도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LG전자가 지난해 12월 △B2B(기업 간 거래) 사업조직을 강화하고 △하드웨어 중심에서 솔루션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대대적 조직개편을 실시한 것은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남 부회장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조윤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경기가 안 좋으면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이 연구개발(R&D) 투자인데 그런 방식으로는 R&D 투자 기간이 수십 년에 달하는 선진 기업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 뭉쳐야 죽지 않는다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다. 휴대전화는 톱5 안에 삼성전자, LG전자가 포함돼 있다.

그러나 대한상공회의소 자료에 따르면 반도체의 핵심 부품 소재를 외국에서 수입해 오는 비중은 절반에 가까운 48.0%. 휴대전화의 경우는 무려 60.0%에 이른다.

산업계에서는 “부품 소재 관련 중소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협력은 서로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상황이 왔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포스코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이미 운용 중인 4000억 원 규모의 ‘중소기업 지원 펀드’ 외에 최근 추가로 600억 원을 조성키로 했다. 포스코와 포스텍(포항공대) 등에 근무하는 박사급 전문 인력 600여 명을 활용해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 지원도 강화할 계획이다.

박상수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중소기업 간 수직적 협력 못지않게 대기업 간의 수평적 협력도 중요해졌다”며 “‘국내 시장의 경쟁자 죽이기 전략’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선의의 경쟁’ 구도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위기를 딛고 성장해온 불굴의 한국 기업들

‘키 높이의 위기 탈출 보고서.’

과거 외환위기를 질적 도약의 계기로 탈바꿈시켰던 삼성그룹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은 요즘 다시 회자되는 표현이다. 당시 그룹의 한 팀장(전무급)이 위기를 돌파하려면 조직문화를 어떻게 바꾸고, 사업체질은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등을 정리한 보고서가 A4 용지로 사람 키만큼 방대했던 일화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들은 “그만큼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한 철저한 대응전략을 세워야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외환위기 당시 태평양)도 위기를 먹고 자란 기업 중 하나다. 프리미엄 방문판매라는 새로운 유통 채널을 개발해 1995년 21.6%였던 화장품 시장점유율을 2000년 29.3%로 끌어올렸다.

쿠쿠홈시스는 불황기에 공격적인 브랜드 마케팅으로 단숨에 시장 1위로 등극한 회사다. 외환위기 때 밥솥 부문에서는 유일하게 쿠쿠만 적극적 광고와 마케팅을 한 결과 ‘밥솥=쿠쿠’라는 등식을 소비자의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이장우 이메이션 글로벌브랜드 총괄대표는 “불황기에 허리띠를 졸라매는 기업이 많은데 생각과 상상의 머리띠마저 졸라매면 비극적 결과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정부와 기업, 백짓장도 맞들라

“규제 개혁은 경제 살리기의 핵심 과제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2일 신년 국정연설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규제 개혁은 ‘별도의 추가 비용 없이 경제적 효과는 가장 큰’ 수단으로 불린다. 지난해 3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355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규제 개혁을 하면 국내에 언제쯤 투자하겠느냐’고 물은 결과 ‘1년 이내’는 20.4%, ‘2∼3년 이내’는 41.5%였다.

그만큼 규제 개혁은 한국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 창출 등을 위한 간절한 소망인 것이다.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은 공교롭게도 1, 2차 오일쇼크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경제성장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며 “이번 위기를 정부와 기업, 국민이 함께 극복한다면 한국은 오래지 않아 주변 국가의 부러움을 받는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애플, PC불황때 MP3분야로 눈돌려

멀리 보고

노키아, 문어발 정리후 휴대전화 사업

선택 - 집중

■ 위기를 기회로 바꾼 전략은

2001년 닷컴 거품 붕괴로 인한 불황기에 인텔은 오히려 신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를 계속하며 ‘펜티엄4 프로세서’에 대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였다. 반면 경쟁업체인 AMD는 수익성 악화를 우려해 신규 설비 투자를 하지 않았다. 이듬해 AMD는 인력 15%를 감축하는 구조조정에 들어갔지만 인텔은 1위 업체로서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했다.

비슷한 시기 역시 PC산업 불황으로 주력 제품이었던 데스크톱 PC의 판매량이 급감한 애플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MP3플레이어에 주목했다. 애플은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 MP3플레이어 ‘아이팟’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경기 침체는 기업들에 위기이면서 기회가 된다. 한계기업의 도산과 선두기업의 시장 지배력 약화 등으로 요동치는 시장에서 각 기업이 차지하는 지위가 큰 폭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실제 맥킨지가 2000년대 초 불황기 미국 기업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불황 이전 상위 25%에 속했던 기업의 40%가 과거 지위를 상실했다. 반면 하위 75%에 속한 기업 중 14%는 상위권으로 도약했다.

1990년대 초 경기 침체기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은 대표적인 기업이 노키아다. 1980년대 말까지 목재, 제지, 고무, 케이블 등 다양한 사업군을 거느리고 있던 노키아는 1990년대 초 경영 실적이 악화되자 이동통신 사업으로 선택과 집중을 했다.

노키아는 제지, 펄프 등 기존 사업을 대부분 매각하면서 당시 유럽 휴대전화기 2위 업체인 영국의 ‘테크노폰’을 인수했다. 이를 바탕으로 노키아는 세계 일류의 이동통신 업체로 거듭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불황은 경쟁기업들이 마케팅을 적게 하므로 브랜드 파워를 높일 수 있는 적기”라며 “호황기에는 여러 브랜드가 범람해 소비자의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불황기에는 좀 더 명확하게 브랜드를 인식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김남국 기자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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