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盧 전 대통령, 남상국 사장 유족의 恨 풀어줘야

  • 입력 2008년 12월 17일 03시 06분


2004년 3월 11일 정오 무렵,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서울 한남대교에서 한강으로 투신자살했다는 긴급 뉴스가 TV에 떴다. 불과 두 시간 전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지켜봤던 사람들은 심상치 않은 사건임을 직감했다. 노 대통령이 “대우건설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고 크게 성공한 분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노건평 씨)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하는 일이 이제 없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남 씨가 ‘사장 연임’을 청탁하며 노 씨에게 3000만 원을 줬다는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다음 날 일이었다.

그로부터 4년 9개월여가 흐른 어제 남 씨의 부인과 가족이 노 전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당시 노 대통령이 사실도 아닌 주장으로 남편을 자살에 이르게 했으므로 이제라도 사과를 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유족들의 이 같은 요구에 공감한다.

당시 남 씨의 혐의사실 공개는 검찰 발표로 충분했으며 유무죄 및 정상(情狀)은 법원이 판단할 문제였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검찰 발표를 왜곡하고 특정인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망신을 줬다. 노 대통령은 남 씨에 대해 ‘크게’ 성공한 분이라는 강조어법까지 구사해 다수 대중의 시기심을 자극하면서 편을 가르려는 정치적 동기마저 느껴지게 했다.

만약 노건평 씨가 돈을 받았다면 노 대통령은 그런 처신을 한 형님에게 더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졌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사실과 부합되지도 않는 경솔한 말로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써 가족에게 한(恨)을 남겼다.

검찰 수사관과 가족의 말을 종합하면 노 씨의 처남 민경찬 씨가 먼저 연임 로비의 필요성을 얘기하며 접근했고, 노 씨와 민 씨는 서울까지 올라와 H호텔에서 남 씨를 만났다고 한다. 남 씨는 마지못해 회사 간부에게 돈을 전달케 했을 뿐, 노 씨를 찾아가 머리를 조아린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노 씨 등의 행위는 공갈죄에 가깝다.

남 씨의 부인은 최근 노 씨의 구속을 계기로 남편 얘기가 다시 나오면서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말이 없다. 한 번도 유족을 찾아가거나 연락해 유감을 표시한 일도 없었다. 대통령일 때 하지 못한 사과를 지금이라도 하는 게 인간의 도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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