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와 국회 ‘오바마 예산지침’ 배우라

  • 입력 2008년 11월 27일 02시 59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25일 “예산안을 한 줄 한 줄씩, 한 장 한 장씩 들여다보며 낭비성 정부 지출을 줄여 가겠다”고 예산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오바마 차기 행정부는 금융위기로 침체에 빠진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임기 첫 2년 동안 최대 7000억 달러를 투입하는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구상하고 있다. 불황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과감한 재정정책을 펴되, 세금이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용처를 철저히 따지고 정부의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것이다. 세금 오남용을 막겠다는 오바마 당선인의 다짐은 납세자에 대한 예의이자 대규모 경기부양책의 효과를 높이려는 방책이다.

오바마 당선인은 “늘어나는 재정적자와 가라앉는 경제라는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한 우리에게 예산개혁은 지상명제”라고 했다. 한국 역시 같은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도 재정을 동원해 경기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려고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예산에서 ‘과감하게 쓸 곳과 단호하게 줄일 곳’을 엄선해야 한다. 재정 건전성이 그나마 양호한 편이라고는 하지만 당장 내년 예산만 해도 세금으로 모자라기 때문에 부족분은 국채를 찍어 빚을 내는 도리밖에 없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정부 예상대로 2%대에 머물거나 그 이하로 떨어지면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는 사실상 ‘제로’가 되고 세원(稅源)도 취약해진다.

이런 와중에도 국회의원들은 경제위기 탈출을 위한 비상(非常)예산까지 허물어 자기 지역구 사업을 챙기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 여당 의원은 물론이고 국민 부담을 이유로 예산 삭감을 공언하는 야당 의원들까지 예산 나눠먹기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상임위원회 심사를 거치는 동안 증액된 10조 원 이상의 예산 중 민원성 사업은 최종 심사 단계에서 철저히 솎아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 우리 국회에는 예산안을 한 줄 한 줄씩, 한 장 한 장씩 들여다보며 거품을 빼려는 장차관과 의원이 과연 있는가.

오바마 당선인은 차기 행정부의 경제 진용을 발표하면서 “경제위기 해결에 1분도 허비할 시간이 없다”며 개혁의 속도를 강조했다. 시장 안정을 위한 미국 당국의 신속 과감한 조치는 한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굼뜨고 우유부단한 대응과 대비된다.

정부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국회가 본분을 저버리는 상황이 계속되면 경제는 가라앉고 소중한 일자리는 더 많이 사라질 것이다. 오바마 당선인을 능가하는 각오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1분의 허비도 없이 뛰어야 할 곳은 한국 정부와 국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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