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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3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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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국민과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일이 급선무다. 대통령을 나무라고 경제 각료를 불신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아무리 리더십이 모자라고 정책적인 대처능력이 의심스러워도 당장은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과 내각을 믿고 따라야 한다. 혼란한 글로벌 경제상황에서 누구도 딱 부러지게 전망을 할 수도 없고 만병통치의 처방을 내놓을 수도 없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이 하나같이 고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외면하고 딴죽 거는 사람이 너무 많다. 위기극복에 앞장서야 할 국회는 국민에게 정치혐오감만 키우는 정쟁으로 시간을 놓치고 있다. 여당은 지도력을 잃고 우왕좌왕하며, 야당은 불난 집 옆에서 구경꾼 모으는 심보를 보이고 있다. 일부 좌파 시민단체는 광우병 촛불시위의 향수에 젖어 토요일마다 씨도 안 먹히는 집회를 하고 있다. 때맞춰 국가인권위는 시위꾼의 사기라도 높이려는 듯 불법시위를 단속한 경찰을 꾸짖고 있다. 이래선 안 된다.
국민의 협조-동참으로 위기 넘겨
거대 여당은 갈팡질팡하지 말고 국민이 위임한 정책적인 책임을 다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되지도 않는 대화와 타협을 기다리며 정책 시행의 적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야당과 좌파 시민단체도 대한민국이 베푸는 자유를 악용해서 국민과 나라를 더 힘들게 하진 말아야 한다.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말살하려는 행동은 민주시민의 자세가 아닌 공산혁명의 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글로벌 시대의 어두운 단면이다. 그렇다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외면하고 혼자 살아갈 수는 없다. 대표적 폐쇄국가인 북한도 고립주의의 역경에서 벗어나려고 미국과의 외교에 매달리고 있지 않은가. 글로벌 시대의 문제는 글로벌 차원에서 대처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혜를 모아 글로벌 공동체와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외교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다른 나라가 과거 경제위기를 극복한 사례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세계적인 경제대국 독일도 종전 후 여러 차례 경제위기를 겪었다. 그때마다 정부는 한결같이 경기침체로 국민이 실의에 빠지는 일을 가장 경계하면서 국민의 협조와 동참을 구하는 정책으로 위기를 넘겼다. 특히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가 석유를 무기화해 야기된 1973년의 세계적인 석유파동 때 독일의 자동차 생산량은 4분의 1로 줄고 실업자가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일요일 차량운행 금지, 속도 제한, 서머타임제도 등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정부의 정책을 국민은 불평 없이 따랐다.
1980년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으로 두 번째 석유파동이 왔을 때도 석탄, 지하가스, 원자력발전 등 대체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에너지 절약을 호소하는 정책으로 석유 수요를 11% 줄이는 데 성공했다. 1990년 통독 후 동독 주민의 왕성한 구매욕구와 이에 부응한 기업의 과잉 투자 및 과도한 임금 상승으로 촉발된 1993년의 경기침체는 처음으로 300만 명의 실업자를 기록했다. 단축 근무 내지 임금 삭감 및 실업자 재교육 등 고통 분담으로 이 위기도 잘 넘겼다.
정쟁중단-정부신뢰로 힘 모을 때
1990년대 중반부터 급속도로 확산된 인터넷과 휴대전화 산업은 정보기술(IT) 산업의 창업 붐을 일으켰지만 2000년경 인터넷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자 인터넷 주가 폭락을 가져와 무모한 과욕을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지금도 자동차회사 BMW가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9000명의 노동자를 5일간 무임으로 쉬게 해도 노조는 군말 없이 따르고 있다.
국가적인 위기 극복에는 국민의 고통분담 의지와 정쟁 없이 지혜와 힘을 모으는 정치권의 화합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명심할 때이다.
허영 헌법재판연구소 이사장·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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