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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2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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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정상은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생존을 모색하고 새로운 세계경제 질서 형성 과정에서 자국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였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미국 주도의 세계 금융체제 개편을,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아시아-유럽 간 협력을 각각 요구했다.
회담장 주변에서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끝났다는 ‘팍스 아메리카나 종언론’, 세계시장 변화에 대한 정부기구의 무기력한 대응을 비판하는 ‘신(新)무정부주의론’ 등 다양한 담론이 오갔다. 혼란한 세계 금융시장 재편 속에 자국의 이해를 관철하려는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공조 속 경쟁’은 다음 달 15일 워싱턴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 12월 중순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3개국 금융정상회의 등을 거치며 더욱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 방문 기간 새로운 국제금융질서 구축과 아시아 신흥경제국의 참여를 거듭 역설한 것도 전환기 세계시장 속에서 한국의 입지확보에 대한 절박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말’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힘’이다.
1944년 미국 뉴햄프셔 주 브레턴우즈에서 연합국 대표들이 미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한 고정환율제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창설한 바탕에는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고 ‘자본주의 번영’을 세계에 수출하던 미국의 경제력이 깔려 있다. 전후 세계시장 질서를 지배해 온 미국의 발언권이 최근 흔들리기 시작한 것도 월스트리트의 혼란이 상징하는 미 경제의 불안과 무관치 않다.
세계 금융질서 개편 이후 한국의 위상도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시장 속에서 생존능력과 기여도를 평가받느냐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한 은행의 외화(外貨)차입 지급보증 동의안이 여야의 대립으로 처리가 지연돼 왔다. 정치가 아닌 경제에서도 여야가 따로 있음에 국민은 절망한다.
정부는 유동성 공급이다, 선제적 대응이다 말은 많지만 행동으로 시장의 신뢰를 얻는 데 굼뜨고, 경제문제엔 초당적으로 협조하겠다던 제1야당도 이런저런 조건을 붙이며 시간을 끌기 일쑤다.
쌀 소득보전 직불금 문제만 해도 여야는 선심성 보조금만 남발하며 농업구조 개혁을 외면해 온 농정(農政)의 근본적 수술은 뒷전에 둔 채 신구 정권 간 흠집내기에만 열을 내고 있다.
세계화의 파고 속에 노동법 개정을 놓고 여야가 싸움질만 일삼다 외환위기를 맞았던 게 불과 10년 전 일이다. 그때 우리는 IMF에 목을 매야 하는 처량한 신세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최악이 될지도 모를 세계적 경제위기를 극복할 최소한의 국민적 합의 도출마저 실패한다면 대한민국은 건국 60년 만에 다가선 ‘G20’의 문턱에서 다시 변방국가로 주저앉을 수도 있다. 여야가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기를 염원한다.
박성원 정치부 차장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