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8년 10월 10일 02시 58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한 가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은 한두 해 고생하다 살아날 확률이 높지만 경제 체질이 약한 나라는 외화 유출 날벼락에 쓰러지거나 장기 침체에 빠지기 쉽다. 이 역설적 현상은 미국이 여전히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초강대국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모든 나라가 위기면 그래도 미국이 제일 안전한 나라다. 이론적으로 미국은 ‘외환위기’를 겪을 수 없다. 미국도 빚을 지지만 달러로 갚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같이 시장 감시가 엄격한 나라에서 무분별한 통화증발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대신 구제금융 등으로 늘어날 재정적자의 상당 부분을 외국자본 유입을 통해 메우려 들 것이다.
한국, 경제구조 취약해 불안감
이번 사태로 미국의 신뢰가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전 세계가 미국 국채를 사들이며 그들의 경제 회생을 도울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만큼 세계경제가 불안하다는 얘기다. 요즘 상황에서 달러화가 폭락은커녕 의외의 강세를 보이는 것도 이런 기대를 반영한다. 재정적자와 외환 부족에 시달리다 위기가 터졌던 남미국가가 통화가치 급락과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것과 대조되는 현상이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은 급속히 개방되고 세계시장에 통합됐지만 경제구조는 여전히 취약하고 거시정책은 늘 불안하다. 외부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근근이 버텨온 것은 부지런한 국민과 기업이 가꾼 실물경제 기반 덕분이다. 그나마 성장잠재력은 떨어지는 추세다.
그런데 다시 찬바람이 불고 있다.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현 정부는 물론 향후 우리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다. 상황에 끌려다니며 금융 불안을 잠재우고 경기 침체를 완화하는 수준에 그치면 성공한 정부로 평가받기 어렵다. 어차피 불황은 내년은 지나야 끝이 보일 것이고 그 뒤는 힘 빠진 잔여 임기다. 머리를 굴려 그동안의 정책 실패를 슬그머니 외부 충격 속에 묻어버리려 한다면 역대 최악의 정부가 될 수 있다.
위기를 직시하고 정면 대결하는 것이 정답이다. 외환위기 때와 다르다고 자만하면 정말 오산이다. 더 못한 측면도 많다. 우선 밖에서 도와줄 힘이 없다. 정부 신뢰가 너무 추락해 정책이 힘을 받기 어렵다. 새롭게 축적된 구조적 취약성이 한둘이 아니다. 외환보유액이 얼마니, 정부재정이 어떠하니 하는 것 모두 한가한 얘기다. 시장이 정부를 안 믿으면 비축외환이 많아도 투기를 잡기 어렵고 아무리 재정을 동원해도 소비심리를 살리기 힘들다. 다행히 금융위기는 피한다 해도 경기 침체 장기화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을 수 있다. 차라리 한 방 맞고 일어나는 것이 낫지 일본식 장기 불황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현 정부는 임기 1년이 다 가도록 국정 우선순위 부각에 실패했고 시장제도 확립에 필요한 개혁을 이념 공방에 휩쓸리게 하는 오류를 범했다. 임기응변식 관료형 대책만 난무하지 도대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겠다는 그림과 자신감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경제책임자 한둘 바꾼다고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다. 초점 없는 ‘100대 국정과제’에 시장은 감동하지 않는다.
거국내각 등 역발상 필요한 때
위기는 판을 바꾸는 전기가 될 수 있다. 선제적인 거국내각도 방법이다. 야권에서 정치력과 경제식견이 있는 사람을 찾아 개혁 정당성을 높인 뒤 한두 개씩 핵심 과제를 치고 나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야당 출신 총리가 대대적인 정부개혁, 세제개혁을 맡아 하고 이 대통령은 민생과 성장동력에 집중하는 식의 역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금융, 규제, 노동개혁까지 이룬다면 역대 최고의 정부가 될 수도 있다. 꿈같은 얘기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