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차지완]물러난 정운천 장관이 하고 싶었던 말

  • 입력 2008년 8월 6일 02시 59분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1일 국회 쇠고기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이날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협상과 관련해 종전과 달리 강한 어조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기자는 퇴임을 앞둔 정 장관을 인터뷰하기 위해 토요일인 2일 정부과천청사 장관 집무실을 찾았다.

“이제는 국면을 바꿔야지요. 그동안은 상대방에게 아무리 이야기해도 들을 준비가 안 돼 있어서 말을 아껴왔어요.”

정 장관은 “어제 국회에서 보여준 장관 모습이 아주 작심하고 나온 것 같았다”는 첫 질문에 이렇게 말을 꺼낸 뒤 MBC PD수첩의 왜곡보도 등 민감한 문제에도 주저하지 않고 답변했다.

▶본보 5일자 13면 참조
정운천 “PD수첩, 사상최대 파문 일으킨 픽션”

4월 18일 쇠고기 협상 타결 뒤 3개월여 동안 불법 폭력시위로 한국 사회를 얼룩지게 했던 쇠고기 파동의 중심에는 PD수첩이 있었다. 다른 한 축에는 식품 주무부처의 책임자인 정 장관이 있었다.

쇠고기 파동의 출발선에서 양자의 모습은 극명하게 갈렸다. PD수첩은 미국산 소의 광우병 위험성을 집중 부각시키며 각광을 받았다. 반면 정 장관은 ‘국민을 광우병에 노출시킨 주범(主犯)’으로 꼽혀 시위 현장에서 ‘매국노’ 소리까지 듣는 마음고생을 했다.

그러나 협상 타결 3개월 반이 조금 더 지난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PD수첩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시청자 사과’라는 중징계 결정을, 서울남부지법은 일부 방송 내용에 대해 ‘정정 및 반론보도’ 판결을 내렸다.

PD수첩은 방송 내용 중 상당 부분이 ‘거짓과 억지’로 판명되면서 신뢰도에 돌이킬 수 없는 흠집을 남겼다. 일부 시청자를 잠시 속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었다. 반면 ‘인격 살인’에 가까운 매도를 당해야 했던 정 장관의 누명은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그는 PD수첩에 대해 “사상 최대의 파문을 일으킨 픽션”이라며 “이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만큼 ‘잘못한 사람은 잘못했다’고 평가하면 된다”고 말했다. 자신이 정부 차원에서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불명예 퇴진을 하는 만큼 왜곡된 정보로 불법 폭력시위를 촉발한 세력에 단호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PD수첩과 정 장관의 처지가 몇 달 사이에 달라진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기간에 나타난 이성(理性)의 실종과 광풍(狂風)에 가까운 사회 혼란은 ‘픽션에 휘둘리기 쉬운 한국 사회’의 취약성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차지완 산업부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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