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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31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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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쇼르 마부바니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공공정책대학원장은 올해 초 “미국 대선은 세계에서 가장 비민주적인 제도”라며 “세계인이 미국 대선에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도발적인 화두를 던졌다.
그의 말에는 3억300여만 미국인은 물론 지구촌 모든 구성원 역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강행한 ‘테러와의 전쟁’에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있었지만 그의 ‘일방주의’에 대해 세계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아쉬움이 묻어 있다.
지난주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의 중동 및 유럽 순방에 쏠렸던 관심은 세계인들이 미국의 ‘새로운 외교’에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 줬다. 오바마 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강조해 온 ‘변화’와 ‘희망’을 이제 전 세계가 미국에 기대하는 것이다.
오바마 후보도 이에 부응하듯 24일 20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베를린 승전탑 앞 연설에서 과거 8년간의 미국 외교를 반성한 뒤 “미국이 달라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해외에서의 환호가 미국 내 인기도와 직결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라이벌인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 측이 “솔직히 최악의 한 주를 보냈다”고 자평했지만 유에스에이투데이와 갤럽이 25∼27일 실시한 공동 여론조사 결과 두 후보 간 지지율 격차는 지난달의 6%포인트(오바마 후보 우위)에서 3%포인트로 오히려 줄었다.
오바마 후보가 최고사령관으로서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도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41%로 나타나 지난주의 40%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오바마 후보는 이 같은 결과를 예측이라도 한 듯 25일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름값 인상을 걱정하고 일자리를 고민하는 미국인들은 내가 한가롭게 세계를 어슬렁거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순방을 통해 국민의 머릿속에 내가 세계무대에서도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면 성공”이라며 “충분히 위험부담을 감수할 만한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자평했다.
미국의 역사도 해외에서 존경받는 대통령에 대한 국내 정치적 평가가 좋았던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걸프전쟁 승리라는 후광을 안고 재선에 도전했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우리에겐 유럽의 작은 나라인 리히텐슈타인보다 미국의 작은 타운인 뉴햄프셔 주 리틀턴에 신경을 더 많이 써줄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빌 클린턴 후보에게 무너졌다.
제1차 세계대전을 종결짓고 새로운 국제질서를 이끌 국제연맹 창설을 주창했던 우드로 윌슨 전 대통령의 이상주의도 ‘민의의 전당’인 의회로부터 냉담한 평가를 받았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역시 도덕을 중시하고 인권을 강조하면서 국제무대에서 각광을 받았지만 미국 역사는 그를 가장 무능한 대통령 중 하나로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 선거는 미국을 이끌 지도자를 뽑는 국내정치 과정일 뿐 세계의 대통령을 선정하는 자리는 아니다. 또한 오바마 후보에 대한 유럽과 중동의 환대가 세계 지도자로서 그의 역량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한 표를 행사할 지구촌 식구들은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미국의 지도자가 새로운 미국의 4년을 이끌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순간 비로소 큰 박수를 보낼 것이다.
하태원 워싱턴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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