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헌재]국회는 승용차 홀짝제 면제지역인가

  • 입력 2008년 7월 16일 03시 01분


공공기관 승용차 홀짝제 시행 첫날인 15일 오전. 한승수 국무총리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세종로 정부중앙청사까지 걸어서 출근했다.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업무용 차량을 이용해 정부과천청사에 나왔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하철을 탔다.

이날 전국 공공기관의 주차장은 평소보다 눈에 띄게 한산했다. 아침 출근 시간대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본관으로 들어오는 차량은 손으로 꼽을 만했다. 오전 9시에는 주차면 중 절반에 150대의 승용차가, 오후 4시에는 162대가 주차돼 있었다.

정부 각 부처 수장들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솔선해 홀짝제를 지켰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홀짝제 날에는 직원들과 함께 ‘카풀’을 하기로 했다. 출근 뒤 업무를 볼 때에는 연료가 적게 드는 하이브리드 차량을 이용할 예정이다.

많은 공무원도 동참해 승용차를 집에 두고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정부과천청사까지 출근 버스를 탄 한 공무원은 “평소보다 인원이 크게 늘어 빈자리가 없었지만 고유가 위기를 극복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는 데 모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전혀 딴 세상이었다. 오전 11시경 의원회관 앞에는 차량 번호가 짝수인 검은색 대형 세단 10여 대가 늘어서 있었다. 의원회관에서 나온 국회의원들은 비서진의 수행을 받으며 태연하게 차에 올랐다. 국회의사당 본관 지하주차장에도 짝수 번호의 차량들이 즐비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최근 정부의 에너지절약 대책에 입법부도 적극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홀짝제는 회기 중에는 자율적으로 운영한다. 비회기 중에는 의무적으로 실시되지만 국회의원과 보좌진 차량에 대해서는 탄력적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회기든, 아니든 홀짝제가 사실상 면제되는 셈이다.

한 보좌관은 “의원님이 국정조사 특위 간사라 정신없이 움직여야 되는데 홀짝제를 지키라는 건 일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차를 두 대 굴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국회도서관을 찾은 자영업자 이영복(46) 씨는 “일부러 차를 국회 밖에 주차했는데 들어와 보니 짝수 차량이 수두룩하더라”며 “그렇게 따지면 차 없이 일하기 힘든 사람이 우리나라에 한두 명이겠느냐”고 비판했다. 시민들의 싸늘한 시선을 국회의원과 보좌진이 아는지 모르겠다.

이헌재 사회부 un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