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유성운]촛불 우려 발언 공격하는‘거짓 민주주의’

  • 입력 2008년 6월 28일 02시 58분


‘딕시칙스’는 한때 미국 컨트리 뮤직 사상 최다 음반 판매를 기록한 여성 그룹이다. 하지만 이들은 2003년 런던 공연에서 이라크전과 관련해 “부시(대통령)가 텍사스 출신인 게 부끄럽다”고 말했다가 한순간에 추락했다. 그 말에 불만을 가진 이들의 비난이 쏟아졌고 방송사들도 이들의 출연을 꺼렸다.

지난해 국내 개봉했던 ‘딕시칙스: 셧업앤싱’은 이 같은 사례를 통해 대중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위기에 처한 현실을 고발했다. 이 영화 같은 일이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아나운서 황정민 씨가 26일 라디오 생방송에서 “물대포 쏘는 경찰이야 기대한 게 없어서 그런가 보다 했지만 시위대의 과격해진 모습은 많이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가 이틀째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발언 이후 청취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황 씨는 방송 도중 사과했지만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게시판에는 황 씨를 비난하는 글이 이어졌다. 그는 27일 오전 방송에서 다시 사과했고 오후에 공식 사과문도 게재했으나 비난은 멈추지 않고 있다.

27일 오후에도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용서하고 어쩌고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을 져야 한다” “정선희 씨 그리 되는 거 봤으면 입조심을 해야 했다” 등 섬뜩한 글이 올라오고 있다. 다음의 아고라에는 황 씨의 퇴출 서명 운동이 진행돼 이날 오후 11시 반 현재 4500여 명이 참여했다.

개그우먼 정선희 씨도 최근 비슷한 사유로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석에서 물러났다. 정 씨는 청취자 사연을 소개하며 “광우병 뭐다 해서 애국심을 불태우면서 촛불집회를 해도 이런 사소한 것, 환경 오염시키고 이렇게 맨홀 뚜껑 퍼가고, 이게 사실 굉장히 큰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되는 범죄”라고 말했다가 표적이 됐다. 세 차례 사과를 했지만 비난이 이어졌고, 급기야 방송에서 물러났다.

정 씨의 발언은 시위에서 무시되기 쉬운 질서를 지키자는 원론에 불과한 것이다. 황 씨도 그와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일부 촛불시위대는 기본조차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두 사람을 집요하게 비난했다.

진정한 민주주의라면 촛불시위의 촛불에 우려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생각이 존중되어야 하는 게 민주주의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다음 아고라에서 황정민 퇴출 반대 서명 운동을 펼치는 ‘미래’라는 누리꾼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한 개인을 집중 공격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말했다.

유성운 문화부 polaris@d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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