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두원]국정과제 차질없이 추진돼야

  • 입력 2008년 6월 25일 02시 57분


지난 한 달은 참으로 어렵고 답답한 시간이었다. 마치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오는 느낌이었으며, 이성적인 판단과 논리적인 토론이 배제된 채 성난 민심과 이에 가세한 일부 폭력적인 세력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이제 다행스럽게도 사태가 서서히 안정되는 분위기이다. 다소 이른 감이 있지만, 경제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이번 사태를 통해 얻은 교훈을 다음과 같이 되새김질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통상협상팀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다. 이들은 마지막까지 재협상이라는 정치적인 유혹을 이겨내고, 벼랑 끝 전술까지 써 가면서 우리에게 최대한 유리한 내용의 추가협상을 이끌어 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재협상이라는 쉬운 카드를 사용해야 한다는 정치적인 유혹을 극복했으며, 기존의 협상 내용을 살리면서도 민의를 반영한 쇠고기 추가협상을 이끌어 낸 것이다.

통상과 무역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식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이지만, 작년에 합의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내용은 누가 보더라도 한국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자유무역협정이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의 민주당 대선주자인 버락 오바마는 자신이 집권할 경우 기존의 협상 내용을 재고하겠다는 위협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 통상팀이 이번 사태로 전면 재협상에 임했다면, 이는 정치적인 명분 하나를 얻기 위해서 경제적인 실익 10개를 포기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을 것이다.

개혁조치 후퇴하면 역풍 맞아

이번 사태로 얻은 또 하나의 교훈은 바로 정치력의 중요성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제시해도, 정치적으로 이를 설파하고 홍보할 능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누구나 절감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런 교훈을 이번 기회에 뼈저리게 체험하였을 것이며, 이 때문에 대대적인 인적쇄신을 단행하였을 것이다.

이번 사태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반면교사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번 일로 기왕 추진하고 있었던 여러 개혁조치들이 후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한 달간 우리 국민이 보여준 민심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스타일에 대한 불만이었지,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한 불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일 새롭게 기용된 청와대와 내각의 각료들이 이번 사태로 중요한 국정과제들을 연기하거나 재고한다면, 이는 또다시 정치적 역풍을 맞게 될 것이며 이 정부에 주어진 역사적 소임을 망각하는 과오로 기억될 것이다.

앞으로 남은 국정과제들은 공기업의 구조개혁과 민영화, 각종 규제개혁, 그리고 노사관계의 선진화 등 하나같이 민감한 사안들이다. 주로 정치인과 관료 출신들로 짜인 새로운 청와대 인사들에게는 정치적으로 다루기 힘든 사안들일 것이다. 따라서 자칫하면 복지부동하는 자세로 대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는 이 대통령이 이들에게 바라는 참뜻이 아닐 것이다. 대통령이 정치인과 관료 출신들을 대폭 기용한 이유는 앞으로 처리해야 하는 민감한 사안들을 정치력을 발휘해서 해결하라는 의미이지, 모든 것을 정치논리로 풀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특히 경제현안은 경제논리로 풀 때 최선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새롭게 기용된 청와대의 인사들은 이러한 경제논리를 정치로부터 최대한 보호하는 것이 자신들의 소임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 속담에 이왕 맞을 매라면 일찍 맞는 게 낫다는 이야기가 있다. 만일 이번 사태가 큰 교훈이 되어 이명박 정부의 철학과 행동을 가다듬는 계기가 된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일로 인해 모든 국정과제들이 정치적인 논리에 휘말리고, 인기영합적인 정책이 난무한다면 이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최악의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우파 포퓰리즘’이라고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포퓰리즘 떨쳐야 선진화 성공

국민도 이제는 냉정을 되찾아야 할 때다. 집단의사표시는 더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처음 가졌던 순수한 열정마저 정치적 운동과 파괴적인 선동으로 변질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자제해야 한다. 만약 이명박 정부의 개혁과제들이 난파되는 바람에 이 정권에서도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선진화의 길은 다시 멀어지고, 그 피해자는 결국 서민들과 중산층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두원 객원논설위원·연세대 교수·경제학leedw104@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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