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파국적 혼란은 안된다

  • 입력 2008년 6월 5일 22시 59분


광화문 촛불시위가 29일째로 접어들었다. 현충일이 낀 주말 연휴를 맞아 서울 도심에서는 72시간 철야 집회가 열리고 있다. 촛불집회 지도부는 10일 시위에 100만 명을 집결시킬 계획으로 군중 동원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민주노총은 쇠고기 협상 파문을 하투(夏鬪)와 연계하려는 전략 아래 총파업 찬반투표를 진행 중이다. 18대 국회는 문도 못 열었는데 재·보선 결과에 고무된 통합민주당은 촛불을 들고 거리정치에 박차를 가할 모양이다. 촛불시위는 6·10 민주항쟁 21주년, 6·13 여중생 사망 6주기, 6·15 남북공동성명 8주년을 동력으로 삼아 출범한 지 100일 남짓한 정부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촛불시위의 원인은 이명박 정부의 무능과 안이함이 제공했다. 이명박 정부는 캠프 데이비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쇠고기 협상을 졸속으로 마무리 지음으로써 미국산 쇠고기 안전문제에 대한 국민의 민감성을 고려하지 못했다. 촛불시위 초기에 심각함을 깨닫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다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정부는 촛불시위 민심에 밀려 쇠고기 고시를 연기했다. 한미 양국은 자율규제라는 형식을 빌려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미국 정부는 수출업자에게 월령(月齡) 표시를 의무화하고, 한국 수입업자들은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들여오지 않는 방식으로 합의될 가능성이 커졌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어제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수입되지 않도록 여러 정책이 패키지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촛불시위 민심은 양국 정부에 충분히 전달됐다. 형식이야 어떻든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들어오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미국이 모든 것을 다 들어주더라도 촛불시위를 계속 끌고 가려는 세력도 있는 것 같다. 일부 농민단체는 30개월 미만 쇠고기 수입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시위 지도부는 국민이 안전한 쇠고기를 먹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촛불시위에서 등장하는 구호대로 ‘MB 탄핵’과 ‘정권 퇴진’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출범 100일을 넘긴 정권이 흔들려 헌정질서(憲政秩序)가 중단되고 대통령이 퇴진하는 사태가 일어난다면 나라가 가공할 혼란과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고유가와 성장률 둔화, 물가 불안으로 경제가 힘겨운 시기에 촛불시위가 무기한 계속되면서 경제가 더 불안해지고 있다. 국민의 피로감도 나타난다. 보수단체들이 맞불집회를 예고해 도심에서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 촛불을 들었든, 들지 않았든 파국적 혼란은 다수 국민이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건전한 이성으로 파국적 혼란을 막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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