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기자의 digi談]소프트웨어는 중립적인가?

  • 입력 2008년 6월 3일 0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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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습니다. 1970년대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이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움직이는 국가’를 건설하려 했다는 내용입니다.

아옌데 정권은 ‘사이버신(Cybersyn)’이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사회주의 통치에 적합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습니다. 이 소프트웨어는 전국 공장의 매일 생산량, 근무시간, 에너지 소비량 등의 정보를 대통령궁의 컴퓨터로 보내 분석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 의자에 앉은 통치자가 컴퓨터 화면을 보며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죠. 아옌데가 시도한 ‘소프트웨어로 움직이는 사회주의’는 1973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인해 중단됐지만, 1972년 칠레의 대규모 파업 당시 일부 사용됐다고 합니다.

우리는 보통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나 한글과컴퓨터의 ‘ㅱ글’ 등과 같은 소프트웨어를 볼 때 가치중립적인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칠레의 경우에서 보듯이 사실은 소프트웨어가 특정한 가치관이나 태도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어떤 소프트웨어가 많이 쓰이느냐에 따라 그 방향으로 세상의 모습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 중 하나인 미국 IBM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IBM은 기업들이 자사(自社)의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혁신(Innovation)’을 실현해야 한다고 설득합니다. IBM의 소프트웨어는 ‘연구는 미국에서, 생산은 중국에서, 회계는 인도에서’ 하는 글로벌 기업을 가능케 해줍니다.

이 속에는 국제 분업이라고 하는 세계화의 논리가 녹아 있죠. IBM의 소프트웨어가 많이 팔릴수록 글로벌 경제 환경이 점점 자리를 잡게 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사회를 변하게 하는 소프트웨어는 무엇일까요. 여론을 들썩이는 인터넷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프로그램 등이 그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빚어내는 문제점을 지적할 때마다 포털들은 “이는 가치중립적인 소프트웨어가 자동으로 정하는 것”이라는 답변만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프트웨어가 자칫 한국 사회를 사회통합이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고민하지 않은 채 일시적인 다수결에만 휩쓸리는 세상으로 만들게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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