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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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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금융시장에서 악성 변수가 터지면 그의 몸값은 치솟는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달러화 가치가 급락했을 때도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앞 다퉈 Mr. 엔에게 훈수를 청했다.
한국에서 ‘Mr. 원’을 찾자면 못 찾을 것도 없다. 김용덕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과 국제업무정책관(차관보급)으로 재직할 때 Mr. 원으로 불렸다. 외환업무를 4년 넘게 맡았고 실적도 괜찮은 그에게 외국인 투자가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렇지만 Mr. 원의 중량감은 Mr. 엔에 크게 못 미친다. 한국의 경제 규모가 일본보다 작고 원화의 국제적 위상이 엔화에 뒤지기 때문이다. 두 나라 외환정책의 수준 차가 스타 탄생과 스타 부재(不在)라는 상반된 결과를 낳았다고도 볼 수 있다.
Mr. 엔의 현역 시절 엔화는 달러당 70엔대 후반에서 150엔 언저리까지 오가며 롤러코스터를 탔다. 금융시장은 아우성이었지만 역대 대장상들은 여간해선 이 문제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민감한 환율 문제는 전문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카키바라 재무관은 자신에게 주어진 재량권을 무기로 엔화를 연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후임자들도 재임 시절 Mr. 엔으로 불리며 활약했다.
요즘 한국에 Mr. 원으로 행세하는 사람이 갑자기 많아졌다. 기획재정부 강만수 장관과 최중경 차관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환율 희망치’를 언급하고,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한마디씩 거든다. 재정부의 국제금융 라인은 ‘윗분’들의 환율 발언을 수습하고 해명하느라 바쁘다. 시장은 시장대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혼란스럽다. 시세가 출렁일수록 외국의 투기세력이 돈을 벌 확률은 높아진다.
강 장관은 환율이 국익에 부합해야 한다고 믿는 ‘환율 주권론자’이고 최 차관은 국제금융국장 때 군사작전식 시장 개입을 자주 해 ‘최틀러’라는 별명이 붙었다. 무리한 개입이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원화 가치를 떨어뜨려(환율 상승) 수출을 늘리고 경기를 살리려는 이들의 충정엔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투기세력은 성향이 같은 두 사람의 면면을 보고 어느 쪽에 베팅할지 감을 잡기 쉬워진 것도 사실이다.
1997년 태국 밧화의 비극은 한 나라의 통화가 투기세력의 작전 대상이 되는 순간 금융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환율전쟁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외환 당국은 더 애매모호한 태도로, 때로는 속내와 다른 말을 해서라도 시장과의 두뇌게임을 유리하게 이끌어야 한다. 외환시장에 정통한 관료를 Mr. 원으로 내세워 대외 창구를 단일화하는 게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한국의 외환정책이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움직인다는 점을 알리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장관, 차관은 ‘환율’이라는 노래를 더 잘 부르는 실무 책임자에게 마이크를 넘길 줄도 알아야 한다.
박원재 논설위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