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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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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와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공동으로 실시한 민선 4기 기초 지방자치단체장의 설문조사는 크게 지방자치, 지방재정, 균형발전 등 세 부문으로 나뉜다. 응답을 분석한 결과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지방균형 발전정책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두드러졌다. 허재완(도시 및 지역계획학과) 중앙대 교수는 “과도하게 형평성을 추구하다 보니 수혜를 받은 지자체는 별 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선택받지 못한 지역은 소외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기초단체장의 78%가 지방선거의 정당공천제를 문제로 꼽고, 재정상태에 만족한다는 답변이 4.2%에 그친 점도 눈길을 끈다.》
○ 비(非)수도권도 지역균형 발전정책 외면
노무현 정부는 지역균형 발전정책을 만들며 수도권보다 발전이 더딘 비수도권에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추진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에 대한 수도권의 반대는 예상했던 일이다. 설문에 응한 수도권 단체장 59명 가운데 46명(78%)이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정책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비수도권 지역에서도 부정적 반응이 많이 나온 점은 특이하다.
비수도권 단체장 155명 중 ‘매우 도움이 됐다’는 대답은 17명(11%), ‘약간 도움이 됐다’는 대답은 34명(21.9%)이었다. 나머지 104명(67.1%·무응답 1명)은 ‘보통 이하’라고 밝혔다.
충청권(45.5%)과 호남권(35.1%)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지만 영남권과 강원권은 부정적인 반응이 각각 54.5%, 47.1%나 됐다.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노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이 방향은 옳았지만 정교한 검토가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여러 지역에 공공기관을 나눠 배치하는 등 ‘분산’에 집중하다 보니 모든 지자체로부터 두루 인기를 얻기 힘들었다는 설명이다.
계속 추진하기를 바라는 노 정부의 정책으로는 낙후지역개발사업(26.6%) 공공기관이전(21.3%) 기업도시조성과 혁신클러스터사업(이상 12.1%)을 꼽았다.
○ 정당공천제로 지자체가 정치에 예속
이석형(무소속) 전남 함평군수는 “얼마 전 젊은 단체장끼리 만나 얘기했는데 다들 죽겠다고 했다. 정당공천제 안하겠다는 공약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단체장이나 의원의 공천이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중앙당 정치인에게 달려 있으므로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입후보자가 당적을 바꾸자 지방의원들이 함께 당적을 옮기는 사례가 많다. 일부 후보는 자금지원을 은밀하게 요구한다.
기초 단체장들은 이런 현실을 지방자치제도의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정당별로도 차이가 없었다.
한나라당 소속 단체장의 77.5%, 통합민주당의 76.7%, 자유선진당의 100%, 무소속의 85%가 정당공천제를 빨리 폐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방행정연구원의 조석주 자치행정연구부장은 “의회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공천제 자체가 나쁘지는 않지만 풀뿌리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 있는 독소를 내포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이나 마찰을 해결할 방법으로는 40.6%가 대통령 직속 갈등·분쟁조정위원회 신설을 거론했다.
시도지사협의회나 시군구구청장협의회처럼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협의로 해결하자는 의견은 28.8%였다.
○ 국세와 지방세 비율 70 대 30 이상 희망
자치를 뒷받침할 지방재정에 대해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가리지 않고(95.8%)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의견이었다.
문제에 대한 인식은 같았지만 해결방법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수도권에서는 소비세나 소득세와 같은 국세 이양을 원하는 비율이 54.2%나 됐다.
반면 재정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비수도권 단체장의 50.3%는 지방교부세 증액을 희망했다.
현재 80 대 20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어떻게 조정하는 게 좋으냐는 설문에는 45.3%가 60 대 40을 선택했다. 이 대답을 포함해 80.4%가 70 대 30 이상을 골랐다.
행정안전부가 상반기 중 법을 개정해 국세와 지방세를 75 대 25로 조정할 계획이지만 단체장의 기대수준이 높게 나왔다.
재정 확충을 위한 방안으로 단체장들은 지방세 등 자체재원 확대(50.9%) 새로운 세원 개발(12.1%) 세외 수입 확대(11.2%)를 꼽았다. 재정지출요인을 억제하겠다는 대답은 4.2%에 그쳤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기초단체장들의 제언… 고언…▼
충남 연기 “새정부 세종시 건설 차질없게”
상주-군위 “대운하 사업 확대-조기 실시를”
경북 울릉 “계획은 지자체, 정부는 투자만”
태백-태안 “법질서 준수-공권력 강화해야”
기초자치단체장은 중앙정부의 규제 완화, 재정지원 확충, 지방선거 때 정당 공천제 폐지가 지방자치 발전에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지적하는 단체장도 많았는데 지역별 특성을 감안한 희망사항이 적지 않았다.
최준섭 충남 연기군수는 정권 교체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했다. 그는 “참여정부의 지역균형발전사업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반도 대운하가 지나는 지역에서는 사업을 빨리 시작하고 규모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영언 경북 군위군수는 대운하 사업을 상류까지 확대 개발하자고 했고 이정백 상주시장은 조기 착수, 조기 완공을 주장했다.
정윤열 경북 울릉군수는 지자체가 경제 계획을 만들면 중앙정부가 투자하라고, 한동수 청송군수는 동서 6축 고속도로를 빨리 완공하라고 요구했다.
지역개발을 위해 법을 만들라는 주장도 많았다. 낙후지역 개발법(신정훈 전남 나주시장)과 동해안발전 특별법(채용생 강원 속초시장)이 대표적.
이동희 경기 안성시장은 농촌 고령화대책을, 최명희 강원 강릉시장은 살기 좋은 농어촌 마을사업을 정부에 희망했다.
관료 출신인 임병헌 대구 남구청장은 지자체의 크고 작은 사업을 추진하려면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했으며, 조병돈 경기 이천시장은 지방발전모델 다원화를 원했다.
일부 단체장은 지자체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평가를 제안했다. 지자체 평가사업(정용기 대전 대덕구청장)과 여론의 정책 반영과 피드백의 제도화(김재욱 충북 청원군수)를 말한다.
농림부 차관보를 지낸 안덕수 인천 강화군수는 국민의식 함양과 문화재의 복원으로 조상의 국난극복의지를 되새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 통일된 국민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
박종기 강원 태백시장은 법과 질서가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진태구 충남 태안군수는 공권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충용 서울 종로구청장은 주요 문화재를 지자체가 관리해야 한다고 답했다. 흥인문이 관내에 있는 그에겐 숭례문 화재 이후 문화재 관리가 최대 현안이다.
이종화 대구 북구청장은 “지자체의 애로사항은 언론과 학계에서 거론돼 이미 알고 있다. 실천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라고 꼬집었다. 말과 구호보다는 정부와 지자체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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