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옥자]國史 강해야 세계화 파고 넘는다

  • 입력 2008년 3월 27일 03시 01분


20여 년 전 일이다. 한국관계 학술대회에 논문을 발표하러 일본에 갔다가 일정이 끝난 뒤 젊은 교수의 안내로 관광에 나섰다. 일본에서도 전통문화와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 잘 알려진 교토와 나라 지역을 돌았는데 우선 보존이 잘되어 있는 데 감탄했고 안내하는 교수의 풍부한 역사지식과 열의에 놀랐다.

그는 그 많은 문화재에 대해 전문적인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었다. 아울러 하나하나의 문화재에 대한 뜨거운 애정으로 듣는 이의 마음까지 덥혀 줬다. 함께 갔던 모든 이가 그의 열정에 감염되어 일본문화에 저절로 매료됐다. 나는 속으로 그의 전공이 일본 역사나 문화재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의 전공은 역사나 문화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얘기로는 고등학교 정도의 역사교육만으로도 누구나 기초적인 설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일본이 자기 나라의 역사교육에 얼마나 치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국사가 고시과목에서 빠진 지도 한참 되어 이제는 9급 공무원시험에서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의 7개 사립대가 국사를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겠다더니 지금에 와서 없던 일로 하려 든다는 소식이다. 세계화시대에 국사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사 능력시험 활용폭 넓어져

물론 근자에 역사가 지나치게 이념성을 띠고 정치문제화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런 문제는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한고비 넘어갔다고 생각된다. 배타적이고 이기주의적인 민족주의도 지난 시대의 일로 돼 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세계화시대라고 해도 국가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이다. 세계화는 역사상 되풀이되는 파도에 불과하다.

국사를 모르고 내 역사에 대한 자부심 없이 어떻게 한국인으로서 세계화의 거센 파도를 헤쳐갈 수 있는가. 세계무대에 나가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며 활동할 수 있는 힘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 역사는 한국인의 뿌리이다.

최근 국사편찬위원회에 위원장으로 부임해 보니 이미 시행되고 있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국사교육에 쓸모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험은 6등급으로 돼 있는데 초급(5, 6급) 중급(3, 4급) 고급(1, 2급)으로 나뉘어 있다. 초급은 초등학생, 중급의 3급은 고등학생, 4급은 중학생이 응시하고 고급은 대학생 이상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다. 문제는 객관식을 위주로 해 주관식을 일부 포함하고 있다.

2006년 11월에 시작해 2007년 두 번 시행했고 올해도 6월, 10월에 두 차례 시행할 예정이다. 해외에서도 시행 중인데 2007년 12월 카자흐스탄을 시작으로 올해는 8월 미국에서 실시할 예정이다. 시험문제도 별로 이념적인 편향성을 보이지 않고 있고 미진한 부분은 계속 보강해 나갈 방침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이 시험에 응하고 있다.

이 제도를 국가고시나 수능에 활용하면 비용 안 들이고 국사를 널리 보급하는 데 유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체 입사시험에 이를 활용하면 비용 절감은 물론 여러 번거로움을 줄여 한국사를 공부한 젊은이를 뽑을 수도 있다. 롯데백화점, 우리은행, GS칼텍스 등 기업체가 승진 및 입사시험에 이를 활용하고 있거나 할 예정이다.

국가고시-대입시험때 비용절약

국제교육진흥원에서는 2009년부터 국비유학생 국사시험을 이 시험으로 대체하기로 하였고 성균관대, 서울시립대, 전북대, 강원대, 한성대 등 많은 대학이 이 시험을 활용할 방침이라고 한다. 시험 당사자 측에서 보아도 미리 이 시험에 합격해 놓고 본시험에 집중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분노하기 전에 우선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국민의 역사교육이다. 내 역사를 제대로 모르면 다른 나라의 역사왜곡에 반박할 근거를 잃는다. 아무쪼록 많은 이가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관심을 가져 국민의 국사교육을 강화하고 비용도 절감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옥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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