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배추밭이 된 김제공항 용지

  • 입력 2008년 3월 9일 20시 21분


전북 김제시 백산면과 공덕면 일대의 너른 땅 157만 m²는 농민들이 돼지를 키우고 농사짓던 곳이었다. 정부는 이 땅에 공항을 짓겠다며 보상비 등 470억 원을 풀어 사들였다. 그러다가 “항공수요 전망치가 부풀려졌다”는 감사원의 지적에 따라 2003년 공사가 중단됐다.

작년 대선 때 김제공항 계획이 또 ‘바람’을 탈 뻔했다.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전북 출신 정동영 전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는 대선 공약에 ‘김제공항 재추진’을 포함시켰다. 한나라당은 이를 대선 공약에 넣었다가 이내 삭제했다. 최근 전북도는 이명박 정부 측에 새만금에 국제공항을 지어 달라고 요청했다. 일각에선 이를 김제공항 계획의 포기로 해석한다.

씁쓸하게도 정치인의 ‘공항 게임’ 실패 사례는 전국에 많다. 5공화국 실세였던 경북 예천 출신의 한 정치인은 예천 공군비행장을 민간 비행장으로 바꿔놓았다. 386억 원을 들인 공사 끝에 1989년 말 문을 연 예천공항은 한때 서울과 제주를 잇는 비행기들이 내렸지만 승객이 갈수록 줄어 적자가 늘어나는 바람에 2004년 폐쇄됐다.

김대중 정부 당시 정치실세의 ‘작품’이라는 울진공항은 현재진행형이다. 통신사 AFP가 “1억4000만 달러(약 1330억 원)를 들여 지었는데 항공사들이 취항을 원하지 않고 있다”며 ‘2007년 황당 뉴스’ 중 하나로 꼽은 그 공항이다. 개항이 2003년, 2005년, 2008년 말로 연기되더니 “내년도 불투명하다”는 소리가 들린다. 공사가 85% 진행된 울진공항은 문을 안 열어도 유지보수비, 인건비 등으로 연간 적자가 20억 원은 될 거라고 한다. 혈세가 또 이렇게 낭비된다.

이렇게 지어진 공항은 국민과 지역주민의 혈세를 먹고 산다. 고향에 공항을 짓겠다는 정치인의 발상이 애향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봐줘선 안 되는 게 이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KTX와 고속도로망 확충 등 교통 계획도 무시하기 일쑤다. ‘큰돈이 들어가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는 으레 반대파가 있기 마련’이라며 쉽게 자기합리화를 하는 쪽도 그들이다. 정동영 씨는 작년 한 인터뷰에서 “못사는 동네일수록 공항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런 생각인지, 다른 못사는 동네에도 그 생각을 적용할 수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다시 김제로 가보면, 정부는 사들인 땅을 놀릴 수 없어 그중 약 88만 m²를 인근 농민들에게 빌려주었다. 농민들은 이 땅에다 감자 고구마 배추 무를 재배한다. 혈세 수백억 원을 치르고 사들인 공항 용지의 2년간 임대수익은 2억3000만 원, 올해 예상 수입은 1억7000만 원이다. 기업이 이런 식으로 투자했다간 망하고 말 것이다. 현지 언론에 소개된 한 농민의 푸념은 ‘이 땅의 운명은 무엇인가’라는 자조처럼 들린다. “정부가 돈 주면서 이 땅에서 나가라더니 이번엔 우리한테 돈 내고 농사를 지으라고 하네요.”

말썽을 빚는 대형 국책사업에 쏟아지는 공통적인 비판은 ‘경제를 무시한 정치적 결정의 폐해’이고, ‘비용편익분석 결과가 부풀려져 경제성이 있는 사업으로 포장됐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분석 수치에 분칠을 하도록 동원되기도 한다. 이런 뻔한 꼼수는 이젠 사라져야 한다. 지방공항 건설계획이든, 대운하 건설계획이든 무엇이든 간에. 4월 총선이 한 달 남았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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