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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2월 29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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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이렇게 부지런하다 보니 청와대 전체가 꼭두새벽부터 부산하다. 행정관이나 비서관은 오전 6시, 늦어도 7시면 출근해서 업무 준비를 해야 한다. 대통령실장 같은 사람은 잠자는 시간이 하루 4시간도 채 안 되는 모양이다. 가히 ‘죽을 맛’일 것 같은데, 그래도 행복하다고 한다. 일하는 즐거움, 무엇인가 성취하는 것 같은 뿌듯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니다. 가뜩이나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청와대다. 지난 정권의 어느 수석보좌관은 청와대 근무 1년 만에 이가 다 빠져 버렸다고 했다. 흔히 대통령의 변덕 때문에 장관을 자주 바꾼다고 생각하지만, 더 일을 하고 싶어도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격무가 이어지는 것이 장관 자리이다.
일 강박증이 되레 창조 방해
미국은 다르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처음 백악관에 발을 디딘 뒤, 2004년부터는 현직으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잘하고 있다. 터가 달라서일까? 우리나라에서는 1년을 넘기기가 힘든데 왜 미국에서는 7년, 8년 끄떡없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을 통해 일을 하는 차이 때문일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쉴 때 제대로 쉬기 때문이 아닐까.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설날 휴가도 반납한 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열심히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인수위에 대한 평가는 그리 후하지 못하다. 설익은 정책을 연발하면서 결과적으로 새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켜 버렸다. 왜 그럴까. 부친상을 남모르게 치르고, 부친이 위독한데도 문병을 제대로 가지 못한 경우가 있는 등 그야말로 많은 사람이 몸을 던져 일했다. 그런데도 왜 좋은 소리를 못 들을까.
사람은 잘 쉬어야 일을 잘할 수 있다. 쉬어야 할 때 푹 쉬지 않으면 몸이 감당할 수가 없다. 머리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데 창조적 혁신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아날로그 시대에는 부지런함이 최고 덕목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는 다르다. ‘게으른 천재’가 더 큰 일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 중북부의 한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슬로 시티(Slow city) 운동’은 환경을 귀하게 여기며 한가롭고 느긋하게 살 것을 권면한다. 이 운동을 시작한 지 8년 만에 마을 전체 수익은 운동 전보다 몇십 배 더 늘어났고 고용률 100%라는 엄청난 결과를 이루어냈다. ‘느림의 미학’에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청와대가 정신없이 바삐 움직여서는 안 될 좀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불철주야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다 보면 사람들 사이에 여유가 없어진다. ‘전진 앞으로!’가 만연하면 도덕적 권위주의가 팽배하기 마련이다. 분위기가 경직되고 언로도 막히게 된다. 인수위가 적절한 시점에 ‘아니요’라고 직언을 하지 못했던 탓에 대통령 당선인에게 얼마나 누가 되었는지 기억해야 한다.
마침 이 대통령이 “너무 정신없이 허둥지둥 일하는 모습은 국민을 피곤하게 할 수 있다”면서 ‘적절한 휴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옳은 말이다. 대통령 자신도 주말에는 청와대 밖에서 머물 계획이란다. 경호 관계자들은 반대하지만 “사람을 편히 만나 운동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 대통령의 뜻이 워낙 강하다고 한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잘 쉬어야 일도 잘한다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언젠가 여름휴가를 40일 가까이 즐긴 적이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클린턴이었지만 역대 누구보다 일을 잘한 대통령으로 손꼽힌다. 우리나라 어느 전직 대통령은 ‘사람은 굶으면 죽는다’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부디 이명박 대통령이 ‘사람은 쉬어야 일을 더 잘할 수 있다’는 평범한 철리를 실천에 옮길 수 있기를 바란다.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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