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상인]‘너무 특별한 서울시’

  • 입력 2008년 1월 30일 03시 08분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전국시도지사협의회에 참석하여 향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긴밀한 협력을 약속했다. 한편 오세훈 서울시장은 연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앞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할 생각이며 이는 “따로 당선인에게 건의할 필요도 없이 당연히 될 것”이라 말했다. 이 당선인의 다짐은 마땅히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오 시장의 주장 또한 그런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없지 않다.

서울시장의 국무회의 참석은 오랜 관행이었다가 노무현 정부에서 중단되었다. 그런 만큼 오 시장은 국무회의 참석 재개를 일종의 원상회복으로 간주하는 듯하다. 하지만 만사를 노무현 시대 이전으로 돌리는 것이 무조건 능사는 아니다. 차제에 서울시장의 국무회의 참석 문제는 원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지방자치의 대의와 지역분권의 원칙을 십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잘못 끼워졌다 싶은 첫 단추는 서울특별시라는 대한민국의 수도 이름이다. 전 세계에 무수히 많은 도시 가운데 ‘특별시’라는 이름을 단 곳은 서울이 유일하다. 조선조까지 한양이었다가 일제강점기에 경성부로 불렸던 서울은 1945년 광복을 맞이하면서 본디 우리말 이름을 되찾았다. 1년쯤 뒤 미군정 당국은 ‘서울특별시’를 공식 선포했다.

시장 국무회의 참석, 논의 거쳐야

문제는 번역이었다. 미군정 법령의 영어 원문은 서울의 행정이 경기도 관할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Independent City’였다. ‘Special City’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은 이를 ‘독립시’나 ‘자치시’가 아닌 ‘특별시’로 옮겼다(손정목, ‘한국도시 60년의 이야기’).

말은 씨가 되어 그 후 ‘특별시’는 이름만으로도 무언가 특별한 것이 되었다. 특별시장은 여느 시장과 달라 보였고 특별시민 또한 보통시민과 달리 여겨졌다. 정부 수립 이후 한때 부산이 특별시로 승격하고자 분투한 것도 이런 맥락이며, 정권 초기 북한이 자신의 수도를 ‘평양특별시’로 명명한 것 역시 특별시 명칭의 위광(威光) 때문일 게다.

따지고 보면 미국의 수도 워싱턴DC(District of Columbia)를 ‘컬럼비아 특별구’로 번역하는 것도 아전인수(我田引水)에 가깝다. 수도의 권력화와 비대화를 막기 위해 해당 시민들의 참정권을 일정하게 제한하고자 했던 미국의 건국정신을 감안하면 그것은 정확히 ‘컬럼비아 연방직할구’ 아니면 간단히 ‘컬럼비아 구’로 해야 옳다.

그러므로 서울시장의 국무회의 참석에 관련하여 먼저 ‘서울특별시’라는 명칭의 타당성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합의 과정이 한 번쯤은 있어야 한다. 서울시의 공식 한글이름과 영문명 사이의 명백한 불일치도 세계화 시대에 몹시 계면쩍다. 그리고 만약 서울이 특별시라는 이름값을 하느라 시장의 국무회의 참석을 당연시한다면 제주특별자치도는 왜 아닌가. 만약 서울이 현재 우리나라의 수도라는 사실을 내세운다면 나중에 행정중심복합도시의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서울의 막강한 인구와 경제를 앞세운다면 몇 년 전부터 경기도와 서울이 막상막하가 된 현실은 또 어찌할 것인가.

국무회의에 서울시장이 참석하지 말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서울특별시장만의 관행적 특권으로 치부하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진실로 지방화 시대를 살고 있다면 사안에 따라 유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수시로, 또는 교대로 국무회의장을 드나드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이다. 아니면 기왕 전국시도지사협의회라는 기구가 구성되어 있는 바, 그 대표가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나름대로는 대안이 아닐까 싶다.

지방의 상대적 박탈감 고려를

가뜩이나 서울의 독주 때문에 지방의 좌절감과 박탈감이 나날이 심화되는 시점이다. 이럴 때 서울특별시가 명칭에서부터라도 힘을 좀 빼주면 어떨까. 한편으로 서울은 관습헌법상의 수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광역지방자치단체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러기에 서울‘지방’경찰청이며 서울‘지방’국세청 아니겠는가. 서울의 특권적 명칭과 지위는 중앙집권시대의 유산이다. 지방화 시대를 맞아 지방의 하나로 확실히 재정립하는 것이 서울에도 오히려 이롭지 싶다. 이 당선인은 이 문제를 전 서울특별시장의 관점이 아니라 지자체 단체장 출신 첫 대통령의 눈높이에서 헤아렸으면 한다.

전상인 객원논설위원·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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