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희균]자율 얻은 대학, 이젠 책임 보여줄 차례

  • 입력 2008년 1월 1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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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교육이 팽창하거나 논술 학원이 장사진을 이루면 모두 대학 책임으로 돌아올 텐데 함부로 움직일 수가 있나요.”

한 사립대의 입학처장은 2009학년도 입시안을 어떻게 구상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시원시원하게 확답하기로 유명한 평소 스타일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학입시 자율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역설하면서 입시 정책의 성패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대학으로 쏠리고 있다.

주요 대학은 대선 이후 급박하게 대입 자율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2009학년도 대학 입시 정책에 대해 말을 아끼며 신중을 기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난해 1년 내내 교육인적자원부와 주요 대학이 입시 정책을 둘러싸고 날을 세우며 공방을 벌였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억누르는 교육부와 반발하는 대학’이라는 대결 국면이 사라지면서 책임 소재의 축이 대학으로 이동하는 데 따른 영향이다.

본고사 실시에 대한 우려를 사고 있는 주요 대학이 이런 분위기를 모를 만큼 어리석지는 않은 듯하다. 더 나쁜 결과가 나왔을 때 돌아올 비난에 대해 고심하는 기류도 감지되고 있다.

하지만 벌써부터 일부 사립대가 대학수학능력시험 등급제가 폐지되면 정시모집 논술고사를 폐지할 수 있다며 한쪽으로 우르르 몰리는 것을 보면 여전히 우수 학생 선점을 위한 입시 전략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대학들의 행보를 보면 획일적인 타율에 길들여진 것처럼 보인다. 대학이 특수목적고 학생이나 수능 점수가 조금이라도 더 높은 학생을 뽑는 데만 연연한다면 대입 자율은 성적에 따른 학생들 줄 세우기 경쟁에 악용될 수밖에 없다.

이제 대학은 성적만 보지 말고 잠재력이 있는 학생을 뽑아 잘 가르치는 일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교육부도 다양한 학생 선발을 위해 입학사정관제를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무늬’만 도입하고 자율권을 계속 제한하면 유명무실한 제도로 남을 수밖에 없다.

대입 자율화가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대학은 학생 학부모의 부담을 덜면서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고민을 하고, 정부도 이를 뒷받침하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김희균 교육생활부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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