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성 교수의 소비일기]패키지 해외여행 쇼핑 유감

  • 입력 2007년 11월 7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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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볼 시간도 부족한데…

패키지 해외여행 쇼핑 유감

최근 ‘패키지 해외여행 상품’을 몇 차례 이용했습니다. 직접 모든 것을 챙겨야 하는 개인 여행과 달리 ‘출국장 카운터 앞에 몇 시에 모여라’는 말만 기억하면 되니 더없이 편리합니다.

게다가 현지에 도착해서는 가는 곳마다 박식하고 친절한 ‘현지 가이드’가 나오고, 그야말로 ‘깃발’만 따라가면 됩니다. ‘그게 수박 겉핥기지 무슨 여행이냐’고 비웃는 사람도 있지만, 낯선 곳으로의 첫걸음으로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제 가방은 언제나 터지기 직전입니다. 가는 곳마다 왜 그렇게 좋다는 게 많은지.

중국과 호주에서는 스쿠알렌 등 온갖 만병통치약, 태국과 터키에서는 현지라 싼 거라는 보석, 뉴질랜드에서는 녹용과 녹혈에 양털 이불까지. 그리스에서는 올리브로 만든 값비싼 몸에 바르는 것들을 삽니다. 짐만 봐도 다들 어느 곳을 여행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곳에 데려가더라도 사지 않으면 되지 본인이 사놓고 왜 투덜거리느냐면 할 말이 없지만, 그게 또 막상 그 자리에서는 쉽지 않더군요.

아주 자상하게 챙겨 주던 해외동포 현지 가이드가 ‘이것만은 보장한다’며 강력하게 추천하면 우리네 정서상 마다하기가 어디 쉽나요. 게다가 일행 중에는 한국에서부터 해당 상품의 ‘명성’을 듣고 온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결국 처음엔 망설이던 사람들이 너도 나도 앞 다퉈 사기 시작하면, 마치 나만 중요한 것을 놓치고 가는 것 같은 조바심에 일단 주워 담게 됩니다.

그 자리를 떠나자마자, 아니 사실 떠나기 전부터 시작된 ‘충동구매’의 후회는 여행 내내,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까지 이어집니다.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환불받을 수 있다고 말들은 하지만 사실상 대부분 불가능하지요. 막상 여행사에 문의라도 할라치면 자기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을 합니다. 그곳에 데려간 것이 바로 여행사이면서도.

왜, 꼭 어딘가에 가면 무엇인가를 사야만 하는 걸까요.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꼭 어딘가에 데려가서 무언가를 사게 만드는 걸까요.

패키지여행 상품을 구입할 때면 언제나 이 불편한 기억들로 망설이게 됩니다. 정말 분초를 아껴가며 한 곳이라도 더 구경하고 싶은 여행자들을 어딘지도 모르는 쇼핑센터로 데려가, 그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지….

서울대 생활과학대 소비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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