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창혁]大聯政 수류탄

  • 입력 2007년 10월 1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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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28일.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당원들에게 자칭 ‘저명한 당원’의 편지가 날아든다. 노무현 대통령이 보내는 A4용지 8장짜리 편지였다. ‘지역구도 등 정치구조 개혁을 위한 제안’이라는 제목의 편지는 이후 정치판을 뒤흔든 대연정(大聯政) 소동의 신호탄이었다. 요지는 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주겠으니 선거구 제도를 개혁해 망국(亡國)의 지역구도를 청산하자는 것이었다.

▷2년여가 흐른 지난달 노 대통령은 오마이뉴스와 연쇄 인터뷰를 하고 그때의 대연정 제안을 “자만심이 만들어 낸 오류”였다고 반성(?)하면서 “수류탄을 (적을 향해) 던졌는데 그게 우리 진영에서 터져 버렸다”고 했다. “한나라당이 상당히 당황하고 내부에서 갑론을박할 걸로 봤는데 상대방은 오히려 일사불란하고 우리 쪽이 갑론을박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일언지하에 제안을 거부했고, 반면 재·보선 패배의 늪에 빠져 있던 열린우리당은 심각한 내홍(內訌)을 겪었다.

▷오마이뉴스의 평가처럼 노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선택에 대해 ‘내 탓’임을 분명히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9월 2, 16일 이뤄진 인터뷰가 무려 한 달여가 지나 남북 정상회담이 끝난 다음(7일 이후)에야 연재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잘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친노(親盧)’ 인터넷 매체로 분류되는 오마이뉴스와 청와대가 연재 시점을 협의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본보와 코리아리서치센터(KRC) 조사에 따르면 정상회담 이후 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50%를 넘었다. 남북 정상회담이 노 대통령의 지지도를 어느 정도 끌어올릴 것으로는 봤지만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탄핵 역풍 이후 가장 높은 지지도를 기록했다. 노 대통령은 이런 극적인 반전(反轉)을 기다렸던 것 같다. 대연정 카드를 던져 한나라당의 ‘교란’을 노렸다는 것을 보더라도 노 대통령은 확실히 ‘꾼’이다. 이번에는 실망해 돌아선 친노 지지자들의 재결집을 호소하기 위해 ‘내 탓이오’를 외치고 있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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