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여러 갈래의 좌파와 ‘친북 좌파’

  • 입력 2007년 9월 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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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현재와 완전히 무관한 것 같지는 않으니 옛날 얘기 좀 해 봐야겠다. 올해는 제2차 세계대전 후 포탄이 터지지 않은 새로운 전쟁, 동서 간의 ‘냉전’이 공식화된 지 갑년(甲年)이 되는 해이다. 지금부터 60년 전(1947년) 3월 미국의 상하원 합동회의에서는 그리스와 터키 등지에 공산주의 세력이 침투하는 것을 더는 좌시하지 않고 단호히 막겠다는, 이른바 ‘트루먼 독트린’이 선포됐다. 그리고 같은 해 이달(9월)에는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각국의 공산당 대표가 모여 국제 공산주의 운동 정보국 ‘코민포름’이 결성된다.

여기에 참석한 소련 공산당 서기 주다노프는 개막 연설에서 2차 대전 후의 국제 정세를 도식화해서 유명한 ‘두 진영 이론’을 개진했다. 전후의 세계는 미국을 맹주로, 새로운 전쟁을 도발해 제국주의의 세계 지배를 획책하고 있는 반민주주의 진영과 소련을 선두로, 제국주의에 저항하여 평화를 수호하는 민주주의 진영이 서로 타협할 수 없는 대립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과 서, 좌와 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선명하게 대치된 두 진영 이론이다.

기이한 것은 이처럼 세계를 양분한 ‘두 진영론’은 그 밖의 여러 갈래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을 모조리 ‘반민주주의 진영’으로 포함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민포름이 채택한 결의문에는 프랑스의 레옹 블룸, 영국의 클레멘트 애틀리, 독일의 쿠르트 슈마허 등을 이름까지 대면서 미국 제국주의에 ‘민주주의의 가면’을 씌워 주고 있는 ‘우파 사회주의자들’이라 맹비난을 퍼붓고 있었다.

“사회주의의 적은 공산주의”

이 무렵 나치 독일의 패전으로 군에서 제대한 함부르크의 젊은 대학생 헬무트도 전후의 정치적 이념적 혼란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고민한다. 그때 그는 “조명탄처럼 하늘에서 전후 세계의 정치적 이념적 지형을 밝혀 준” 귀중한 책을 만나게 된다. 1947년에 나온 파울 제링의 ‘자본주의의 저편’이란 책이다, 헬무트는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의 저편에는 하나의 사회주의가 아니라 여러 갈래의 사회주의가 있다는 것, 하나의 좌파가 아니라 여러 갈래의 좌파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명분의 사회주의도 민주주의와 담을 쌓고 전체주의적 계획경제를 강행하면 소비에트 독재체제로 귀결하고 만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마치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담을 쌓고 전체주의적 계획경제를 강행하면 파쇼, 나치의 독재체제로 타락하고 마는 것처럼….

서독 총리로 8년간 사민당 정권을 이끈 헬무트 슈미트를 가르친 파울 제링은 그 뒤 세계적인 크렘린 전문가로 이름을 날린 리하르트 뢰벤탈 교수의 필명. 나도 1960년대의 베를린 유학시절 그의 명강의 ‘소련공산당사’를 들은 일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로부터 4년 후 프랑크푸르트에서 결성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선언문. ‘사회주의는 오직 민주주의에 의해서 실현되고 민주주의는 오직 사회주의에 의해서 완성된다’는 테제를 남긴 이 선언문은 사회주의의 주된 적을 제국주의가 아니라 공산주의라 못 박고 동쪽의 위협으로부터 서유럽을 수호하는 것을 사회민주주의의 임무라 밝히고 나섰다.

한편 같은 무렵(1947년)의 한반도에서는 자본주의의 저편을 지향한 여러 갈래의 좌파 세력(인민당, 신민당, 공산당)이 하나의 정당(남로당)으로 합당해 ‘초록이 동색’이 돼 버린다. 그로부터 한국엔 자본주의의 저편, 우파의 저편엔 오직 하나의 좌파, 북한 노동당과 그를 추종하는 좌파만이 남게 된다.

대한민국 저편의 ‘가짜 좌파’

좌파인 이상 북한의 그것이 사회주의인 줄 믿는다. 자본주의의 저편에 있는 유일한 좌파인 이상 민주주의와 담을 쌓고 언론 출판 결사 집회의 아무런 자유도 없이 절대 권력을 세습해도 그걸 사회주의 체제라 믿는다. 그뿐만 아니라 수백만 근로 인민이 기아선상을 헤매는 가운데 평양의 일각에선 주지육림으로 밤을 지새워도 평등과 분배의 정의는 유일한 좌파인 북쪽에 있다고 믿는다. 게다가 좌파인 이상 6·25 남침전쟁의 도발로 수백만 동족의 귀중한 생명을 희생시킨 북쪽이 이젠 핵 무장을 해도 ‘립 서비스’만 하는 ‘우리 민족끼리’를 믿는다. 대한민국의 저편에는 이런 유의 좌파가 있고 그런 것조차 좌파라고 믿는 친북 좌파가 있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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