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경제읽기]세이코의 와신상담

  • 입력 2007년 7월 7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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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 빼앗긴 고가 손목시계 日시장 탈환하라

《1998년 일본에서는 한 해 동안 7000만 개가량의 손목시계가 팔렸다. 7년 뒤인 2005년 연간 판매량은 64% 수준인 4500만 개로 줄었다. 그런데도 손목시계 시장의 매출 규모는 큰 변화가 없다.》

어찌된 영문일까. 중저가 제품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는 대신 수십만, 수백만 엔대의 고급제품이 고소득층 남성들의 액세서리로 큰 인기를 끌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본시계협회의 추산에 따르면 금액을 기준으로 롤렉스와 브레게 등 스위스 브랜드가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세이코와 시티즌 등 일본 브랜드의 점유율은 20%에 불과하다. 스위스제가 일본뿐 아니라 세계 손목시계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것은 196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스위스제의 독점 구조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세이코가 전지식 손목시계를 내놓은 1969년경이다. 정확도는 높으면서 가격은 싼 전지식 손목시계는 태엽식 제품시장을 무서운 속도로 잠식해 들어갔다.

그 결과 스위스 시계기업은 잇달아 도산했다. 스위스 시계업체 1620곳 중 1980년대 말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570곳에 불과했다. 8만9000명에 이르던 시계업체 종업원 중 6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쫓겨났다.

세이코는 스위스와의 시계 전쟁을 계기로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돋움했지만 진정한 승자는 따로 있었다. 저임금을 무기로 값싼 손목시계를 양산한 홍콩이었다. 홍콩제에 시장을 빼앗긴 세이코는 일본 경제의 거품 붕괴라는 복병까지 만나 길고 긴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세이코는 최근 명품 액세서리 전략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스위스제를 다시 한 번 따라잡기 위해 제품 고급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5년 봄에는 가격이 47만 엔(약 376만 원)인 가란테를 내놨다. 지난해 8월부터는 개당 가격이 575만 엔(약 4600만 원)인 초고가 수제시계를 한정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스위스 브랜드들도 세이코의 도전을 방관하지 않을 기세다. 브레게와 오메가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스와치그룹은 올해 5월 도쿄(東京)의 심장부이자 세이코의 텃밭인 긴자(銀座)에 자체 빌딩을 마련했다.

스와치의 각오가 범상치 않다는 사실은 이곳이 전 세계 자체 매장 중 최대 면적을 자랑한다는 점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세계 손목시계 시장 쟁탈전의 막이 다시 오르고 있다.

천광암 도쿄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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