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손학규 씨 ‘장관, 3選의원, 도지사 14년’의 단물 뱉다

  • 입력 2007년 3월 19일 2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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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씨가 어제 한나라당 탈당을 선언함으로써 그동안의 아리송한 행보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새 길을 창조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떠난다”고 했다. 특히 “지금의 한나라당은 군정(軍政)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버젓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남은 사람들을 ‘수구꼴통’으로 몬 셈이다.

어차피 탈당의 명분이 필요했겠지만 그가 걸어온 길이나 평소 언행에 비춰 보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부정’이다. 그는 1993년 한나라당의 전신 격인 민자당 입당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의 옷을 입고 14, 15, 16대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를 지냈다. 14년여에 걸친 보수정당 소속 정치인으로서 이력이 자못 화려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당을 폄훼하고 이런저런 구실을 내세워 당을 박차고 나가는 게 과연 정치도의에 맞는 일이며, 정치인으로서 책임 있는 처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손 씨는 그동안 경선 참여와 승복 여부를 놓고 세간의 의혹이 일 때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봐라” “내가 한나라당의 수문장”이라는 말로 일축해 왔다. 끝까지 한나라당과 같이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정치인으로서 신념과 신뢰를 중시하는 듯했던 그였기에 국민도 당연히 그렇게 믿었다. 지난해 6월 ‘100일 민심대장정’에 올랐을 때 많은 사람이 박수를 보낸 것도 그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신의 말을 뒤집고 국민의 신뢰를 저버렸다.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린다고 사라진 신뢰가 되살아나진 않는다.

그는 본보가 지난달 10일 ‘손학규 씨 변신하나’라는 사설을 게재했을 때 ‘왜곡’ ‘편파’ ‘언론의 품격과 공정성에 의문’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본보를 비난했다. 이제 와서 그가 어떤 변명을 할지 궁금하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할 것인가.

손 씨의 탈당은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그는 ‘21세기 주몽’ 운운하며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창조하겠다”고 했지만 자기 합리화로 들린다. 마치 이인제 씨가 ‘세대교체론’을 내세워 경선 불복 후 탈당해 독자 출마했던 10년 전으로 정치수준을 돌려놓는 듯한 느낌이다.

그는 “그동안 당을 탈바꿈시키기 위해 온힘을 다했다”고 했지만 실제로 몸을 던져 당의 체질을 바꾸려고 애쓴 적이 있는가. 당내의 의원 줄 세우기와 경선 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수구적 행태’라고 비난한 것도 설득력이 없다. 자신의 낮은 지지율을 당의 구조적 문제인 양 호도하면서 타협 가능성도, 현실성도 없는 ‘선거인단 100만 명’을 고집한 것 자체가 구태(舊態)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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