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고어의 ‘모호한 진실’

  • 입력 2007년 3월 15일 22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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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애매하게 패한 앨 고어 전 부통령이 자신이 제작하고 해설자로 출연한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 덕에 인기가 다시 치솟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위험을 충격적이면서도 재치 있게 경고한 이 영화로 그는 올해 아카데미상(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했다. 영화 말미에서 그는 ‘탄소 중립적’ 생활 방식을 제안한다. 백열등보다는 형광등을 쓰고, 빨래는 건조기 대신 햇볕에 말리며, 자동차는 하이브리드카를 타자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에 대해 1000회 이상 강연을 했다는 고어가 ‘말 따로, 행동 따로’인 위선자라는 주장도 있다. 보수단체인 테네시정책연구센터는 테네시 주 내슈빌에 있는 고어 자택의 지난해 월평균 전기료가 1359달러(128만 원)라고 최근 밝혔다. 이는 미국 가구당 평균 전기 소비량의 20배다. “재택근무 때문에 전기 소비량이 많다”는 그의 설명이 어쩐지 군색하게 들린다. 아내와 단 둘이 사는 그의 집은 건평만 280여 평에 방이 20개, 화장실이 8개다.

▷영화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도 과학자들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내용이 너무 과장됐다는 것이다. 고어 측은 ‘언제까지’라고 시기를 특정하지 않은 채 해수면이 약 6m 상승해 뉴욕과 플로리다 일부가 물에 잠길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지난달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1세기 말까지 해수면은 최대 58cm 상승할 것’이란 상이한 전망을 내놓았다.

▷고어는 명망 있는 집안 출신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인 민주당의 계보(系譜)를 잇는 인물이다. 존 케네디 전 대통령, 존 케리 상원의원, ‘아르마니를 입는 좌파’로 불리는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도 그런 경우다. 고어는 테네시 주 상원의원인 아버지와 성공한 변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하버드대를 졸업했다. 환경과 정보고속도로를 이슈화해 정치적으로 성공했다. 하지만 세상을 향해서는 ‘빨래를 햇볕에 말리자’면서 자신은 전기 아까운 줄 몰랐다. 그런 좌파 거물(巨物)은 한국에도 많지만 말이다.

정 성 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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