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심규선]북한과 일본, 누가 누굴 탓할 수 있으랴

  • 입력 2007년 3월 15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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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북한은 어떤 존재인가. 거칠게 얘기해 좋은 이웃은 아니지만 이용가치가 없는 나라도 아니다. 북한은 공작선 침범, 미사일 발사, 핵개발 의혹 등으로 좋은 이웃이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일본은 패닉에 빠지기도 하고, 울분을 터뜨리기도 한다. 북한 미사일의 사거리 내에 일본열도가 있다는 피해의식은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납치나 군위안부 모두 반인륜적 범죄

하지만 이들 악재는 일본의 ‘호재’이기도 하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쏠수록, 핵개발에 집착하면 할수록 일본의 군비는 늘어만 간다. 국내의 반대나 주변국의 우려는 ‘내 나라를 내가 지키겠다는 데 무슨 잔말이냐’는 논리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 왔다. 일본 군사대국화의 일등공신이 북한이라는 말은 일본에선 터놓고 하는 얘기다. 일본은 눈에 보이는 북한을 이용해 베일 뒤에 있는 중국까지 견제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는 성격이 독특하다. 일본엔 그저 악재일 뿐이다. 좋지 않은 이웃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일이다. 요즘 일본에서 납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한에 1엔도 지원할 수 없고 국교정상화도 없다고 하는 것은 허풍이 아니다. 6자회담의 진전에 따라 ‘고립’을 우려하는 일본의 태도에 약간의 변화가 예상되긴 하지만 아베 신조 정권은 최소한 7월의 참의원 선거까지는 강경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푸는 최선의 방법은 북한이 성의를 갖고 회담에 임하는 것이다. 국제정세가 조금 유리하게 돌아간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회담을 깨고 그 책임을 일본에 전가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북한은 이미 해결된 문제를 다시 꺼내는 것은 죽은 사람을 살려 내라는 것과 같은 억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이 오히려 억지다.

남의 나라의 멀쩡한 국민을 납치한 북한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현재 밝혀진 사람 외에 몇 명을 더 납치했는지, 살아 있는 사람은 있는지, 사망했다면 언제 어떻게 사망했는지를 알고 싶다는 일본의 궁금증은 당연하다. 북한은 납치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해 납득할 만한 결과를 일본에 제공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본도 잘못을 저질렀다. 군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부인함으로써 북한에 빌미를 제공했다. 두 문제는 모두 반인륜적 범죄다. 죄의 경중을 가릴 수 없는 인류보편적 가치에 관한 문제다. 그런데도 일본은 두 문제에 이중 잣대를 들이댔다. 그런 태도로는 국제사회는커녕 상대방조차 설득할 수 없다.

일본이 납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태도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고노 담화’를 흔드는 어떤 행위도 중지해야 한다.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결의안을 저지하려는 로비도 중단하는 것이 옳다. 결의안이 외교위원회나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이를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 표명도 필요하다.

서로 사과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일본 외교의 가장 답답한 대목은 작은 것에 매달려 큰 것을 잃고, 국내에 매달려 이웃 국가를 잃고, 과거에 매달려 미래를 잃는다는 것이다. 군위안부 문제도 그중 하나다. 이미 정부가 공식 사과를 한 마당에 이제 와서 왜 평지풍파를 일으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게 자존심이 아니라 몽니라는 것을 일본만 빼고는 다 안다.

두 나라는 6자회담 말고도 머리를 맞댈 일이 많다. 과거청산과 손해배상, 국교 정상화라는 별도의 양자 트랙을 가야 한다. 납치 문제 해결을 다른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건 비현실적이고 소모적인 일이다. 일본은 모든 현안을 동시에 협상 테이블에 올리고 북한도 납치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매듭을 풀어 가는 게 순리다.

한국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속담이 있듯이 일본에도 ‘눈곱이 코딱지를 비웃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 시점에서 각자 가슴에 새겨야 할 말 같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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