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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25일 19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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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도 많다. 평당 분양가가 1000만 원인 같은 품질의 아파트를 A사는 800만 원에 짓고 B사는 700만 원에 지어 원가를 공개한다면 원가 절감 노력을 한 B사가 ‘폭리’를 취한다고 비난받게 된다. 더구나 분양가를 ‘원가+일정 % 마진’ 방식으로 정한다면 원가 절감을 한 B사보다 A사의 이익금액이 더 커진다. 그러면 건설사들은 원가 절감 대신 원가 부풀리기 경쟁에 나설 것이다. 자연히 원가가 적정한지를 심의하는 절차와 기구가 생겨나고 이런 일을 맡은 공무원들이 건설사에 대해 칼자루를 쥔다. 새로운 ‘비리의 온상’이 생기면서 뒷돈 거래가 이뤄지고 관련 공무원들이 하나 둘 감옥에 간다. 시장원리를 거스른 데 대한 ‘시장의 보복’이다.
이 같은 시장 역행도 문제지만 시장을 맹종하는 것도 옳지 않다. 지금 국회에 올라 있는 이자제한법안에 대한 반대 논리가 그것이다. 악질 고금리의 폐해는 잘 알려져 길게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정작 이자율을 제한하면 급전이 필요한 서민이 더 힘들어진다”는 것이 시장원리주의자들의 반박이다. 일리 있어 보인다.
하지만 현재 사채시장의 평균 금리는 연 204%에 이른다. 사채 이용자의 89%가 2년 안에 신용불량자로 추락한다. “앞으로 자력으로 상환하겠다”는 사람은 20%뿐이다. 이런 돈을 쓰는 것은 당장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퍼마시는 것과 비슷하다.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이 엄격한 이자제한(연 15∼60%) 제도를 가지고 있고, 우리 법원과 대법원도 일관되게 고금리 무효 판결을 한다. 시장원리를 몰라서가 아니다. 정상적 거래가 아니며, 궁박한 상황을 악용한 ‘채무자 경제노예화’를 막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궁핍이 극한에 이르면 자녀를 팔기도 한 것이 불과 100여 년 전이다. 문명사회는 이런 거래를 계약자유원칙이나 시장원리의 이름으로 보호하지 않는다.
이자 제한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금융 소외계층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경제적 취약계층은 정보력도 약하다. 대부업체의 3분의 2가 미등록 불법업체이며, 합법이건 불법이건 대부업자라면 현재도 연 66%의 금리 제한을 받지만 이런 내용을 아는 사채 이용자는 거의 없다. 이들에게 합법적 금융 기회가 있고, 불법 고리채 이자는 갚을 필요가 없음을 알려 줘야 한다. 불법 행위, 불법 업체에 대한 단속은 기본이다. 무엇보다 무담보 소액대출 등 이들을 위한 다양한 금융상품을 내놓아야 한다. 대개 정부가 할 일이다.
간혹 시장이 실패해 사람을 힘들게 하면 제도로 교정해야 한다. 우리가 시장을 중시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시장을 숭배하기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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