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李-朴의 전쟁

  • 입력 2007년 2월 23일 1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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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유력한 두 대선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있는 듯하다. 승자(勝者)는 하나이며 패자(敗者)가 패배에 승복할 수 없다면 이 싸움은 중재와 화해가 불가능한 전쟁인 셈이다. 타협의 여지는 매우 좁아 보인다. 이미 감나무의 감은 무르익었고 그것을 따기만 하면 되는데 상대는 내부 경쟁자일 뿐이다. 당내 경선에서 이기면 본선 승리가 ‘따 놓은 당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터에 무슨 타협이 있을 수 있겠는가.

‘다 익은 감’ 아니다

‘정인봉 해프닝’이 ‘김유찬 파문’으로 이어지면서 박 전 대표 측의 검증론이 주도권을 쥔 양상이다. 이 전 시장 측은 ‘믿을 수 없는 인물’을 내세운 박 전 대표 측의 네거티브 공세라고 의심한다. 그러나 이 전 시장이 국회의원이었을 때 비서관이던 인물이 1억 원이 넘는 거액을 받고 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위증(僞證)을 했다고 ‘양심선언’을 하는 판이니 소이부답(笑以不答)으로 넘어가기는 어렵게 됐다. 당 경선준비위원회가 검증을 한다지만 ‘진실 게임’의 진상을 가려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래저래 전쟁은 길어질 공산이 크다.

전쟁의 결과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미리 예측하기는 어렵다. 이 전 시장의 일부 지지자들은 탈당을 해도 괜찮다고들 하는 모양이지만 과연 그럴지는 이 전 시장부터 자신하지 못할 것이다. 당의 대주주(大株主)인 박 전 대표가 당을 떠날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당내 경선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전쟁 상태에서는 경선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이냐? 그러다가 다 잡은 정권 다시 내주는 게 아니냐? 한쪽에서는 그렇게 걱정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박의 분열을 기대 어린 눈으로 지켜볼 것이다.

올 12월 대선의 최종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느냐는 국민 다수의 선택에 달린 일이다. 다만 그전에 한나라당과 이명박 박근혜 씨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대권은 결코 그들이 따기만 하면 되는 ‘다 익은 감’이 아니다.

최근 한나라당 지지도는 40∼50%에 이르고 한나라당 대선후보 3명의 지지율을 합하면 70%를 웃돈다. 이-박의 전쟁도 그 바탕은 이 같은 ‘대선 필승(必勝)’의 환경에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허수(虛數)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허수의 절대요인은 여권의 대선후보가 아직 부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대가 없는 원사이드 게임의 결과다. 한나라당의 전통적인 지지율은 30% 안팎이다. 지금의 지지율에서 10∼20%는 거품일 수 있다. 거품을 실체로 고정시키는 것은 한나라당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격(格) 있는 보수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진보정당이 실패했으면 보수정당이 집권하는 것이 정당정치의 기본이다. 그 점에서 “이제는 한나라당이라고 (집권해선) 안 된다고 하는 그런 것은 없다”는 최장집 교수의 말에 시비를 걸 이유는 없다. 그러나 한나라당 ‘빅3’ 중 하나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지금의 한나라당으로 집권해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지금의 한나라당’이 어떻게 변화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어 내느냐에 따라 10∼20%의 부동표가 고정표로 바뀔 수 있다. 그들은 노무현 정권에 실망한 나머지 한나라당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기대를 보이는 층으로 언제든지 지지를 철회할 수 있는 그룹이다. 그들은 이명박 박근혜 씨를 대통령 만들기 위해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바른 보수정당이 집권해 흐트러진 나라를 정돈하고 경제를 살려 민주화 이후 삶의 실질적 향상을 이뤄 달라는 뜻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판을 깨선 안 된다

무엇을 보수(保守)하고 어떻게 변화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것인가. 이명박 박근혜 씨는 지금 그 구체적 방법론을 놓고 경쟁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도덕성 검증은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아예 판을 깨는 쪽이어서는 안 된다.

이는 결코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특정 후보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보수정당이 바로 서야 진보정당도 바로 서고 그것이 길게 보아 한국 정당정치와 나라의 발전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이-박의 전쟁은 끝내야 한다.

전진우 大記者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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